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 파일럿 Jan 04. 2022

항공사 직원 항공권으로 뉴질랜드를 다녀왔다.


입사를 하고 나서 뉴질랜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뉴질랜드를 여행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피터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호빗이 살고 있는 그 동화 같은 동네가 뉴질랜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감독판을 기준으로 세 편의 영화를 연속으로 재생하였을 때  11시간 31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가질 정도로 긴 영화이지만, 하루 날을 잡고 이따금씩 정주행을 해도 그 시간이 결코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반지의 제왕 영화를 좋아한다.


사실 말이 11시간 31분이지, 인천에서 LA 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시간과 맞먹는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탔을 때는 잠을 세 번을 자고 일어나도 아직 내 엉덩이는 비행기 좌석에 붙어있을 정도로 지루했던 11시간이었지만, 영화를 볼 때는 순식간이다. 아침에 영화를 틀기 시작해서, 반지 원정대를 결성하는 장면에서는 내 앞에 점심이 놓여져있다가, 프로도가 롯데타워처럼 생긴 건물에 사우론의 눈이 박혀있는 모르도르에 도착할 때쯤 내 앞에는 저녁이 놓여져있다.


어디 그뿐이랴. 반지의 제왕을  보고 나면 이미 아까 먹은 저녁은 소화가  되어 슬슬 출출해질 시간이 되고, 나는 야식거리를 앞에 두고 호빗 : 뜻밖의 여정 영화를 튼다. 대학생 때는 호빗 영화까지  봤던  같은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호빗 영화를 틀어놓고 꾸벅꾸벅 졸긴 하지만, 어쨌든  정도로 나는 반지의 제왕 영화를 좋아한다.  짜여진 세계관에 보기에 지루하지 않은 영상으로 완성된 영화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있을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무 일정도 없는 날, 반지의 제왕 1편을 틀었는데 호빗들이 사는 마을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영화를 보며 “아, 가고 싶다.”라고 말을 하자마자 번뜩이는 생각,


‘가면 되잖아?’


대학생 때는 호빗들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 장면을 볼 때마다 죽기 전에 내가 저곳에 가볼 기회가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제는 그 방문이 꿈으로만 끝나지 않는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나에게는 애사심을 폭발하게 해주는 직원 항공권이 있다. 하지만 이 애사심 고취 티켓은 아주 사소한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유 좌석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영화를 일시 정지하고 회사 사이트에 접속하여 직원 항공권을 알아보니, 이틀 후에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편 좌석이 많이 남아있었다. 바로 직원 항공권을 결제했고, 남은 건 그곳에서 타고 다닐 렌트카였다.


그 이외에 것들은 어차피 뉴질랜드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니 어련히 있겠지 싶었다. 숙소야 근처 Airbnb를 검색하면 되고, 음식점은 Yelp 검색하면 된다. 거기서 입고 다닐 옷은 옷장에 건조가 잘 된 니트 몇 개 챙겨가면 되고 혹시 날씨가 맞지 않으면 기념품 샵에 있는 I LOVE NZ 따위의 글자가 새겨진 티셔츠 하나 사서 입고 다니면 된다.      


렌트카 업체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으로 구분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미리 검색을 해보길 정말 잘했다. 역시 사람은 준비성이 철저해야 고생을 덜한다. 남섬, 북섬 모두 여행하면 좋겠지만 2박 3일의 일정 동안 훑어보는 것 보단 둘 중 한 곳을 정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남섬과 북섬은 어떻게 다른지 나와있는 여행 후기들을 쭉 읽어 나가기 시작했고, 그 중에 눈에 띄는 글은 북섬과 남섬의 분위기 차이를 표현한 글이었다. 북섬은 조금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반면 남섬은 조금 더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고 적혀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섬에서는 양들의 엉덩이만 질리도록 보고 왔다는 후기였다. 운전을 할 때 왼쪽을 봐도 양 엉덩이가 보였고, 오른쪽을 봐도 양 엉덩이가 보였고, 앞을 봤을 땐 멀리 흰색 털뭉치가 보이다가도 가까워지면 바로 그게 양 엉덩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바로 거기에 끌려버렸다. 양들의 엉덩이 말고, 자연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바로 그 남섬에 말이다. 호빗이 살고 있던 마을 촬영장소도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남섬에 있을 것이 분명했고, 나는 현대문명의 북섬에서 조금도 내 여행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다. 북섬에서 남섬으로 가는 지역항공사 티켓과, 남섬에서 타고다닐 렌트카를 예약했다. 이제 정말 끝났다. 여행만 가면 된다.       


여행 당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나는 입국심사를 마치자마자 국제선 청사에서 국내선 청사로 이동해 남섬으로 가는 지역 항공사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면서 남섬에 도착하자마자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어 공항 무료 와이파이에 연결을 했다.     


오클랜드 공항의 국내선 청사


검색을 해보니 호빗 마을의 정확한 명칭은 호비튼 영화 셋트장이었고 해밀턴 외곽에 있는 마타마타라고 불리우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명칭을 복사해 구글지도를 열어, 내가 도착하는 남섬의 공항과의 거리를 재보았다.     


‘14시간 43분’     


응?

아니 뭐 이렇게 오래 걸리지?

반지의 제왕 시리즈 세 편을 연달아 보는것보다 무려 세시간이 더 걸린다고 나온다.     


아, 그래. 남섬이 정말 워낙 넓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고 지도를 축소해나가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아무리봐도 좀 이상하다. 자동차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바다를, 자동차로 건너야 한다. 자동차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라. 뭐 2082년에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만, 지금은 조금 어렵지 않나?      


조금 더 이상한건 그 촬영지가 지금 내가 있는 북섬의 오클랜드 공항 국내선 청사 정중앙에 표시되는 빨강색 점과 그리 멀지가 않다.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 공항 근처에 있는 렌트카 업체로 되어있던 출발지를 삭제하고 현재 나의 위치로 다시 경로를 검색 해보았다.     


‘2시간’     


그렇다.

반지의 제왕 호빗의 마을은 북섬에 있었다.


자연 친화적이고 양들의 엉덩이로 가득한 그 자연의 남섬이 아니라 쭉쭉 뻗은 고층 건물이 가득하고 현대문물의 내음이 물씬 나는 바로 그 북섬에 말이다. 피터잭슨 감독이 촬영한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얼마나 상업적으로 성공했는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지의 제왕 극장 수입을 생각했으면 북섬에 있는게 맞았구나.     


결국 나는 남섬에서 양들의 엉덩이를 보는 것을 시작으로 뉴질랜드 여행을 시작했다. 정말 남섬에 가보니, 양들의 엉덩이밖에 안보였다. 정말 양들이 엄청 많다. 뉴질랜드 국기에 왜 양 그림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여길봐도 양이고 저길봐도 양이다. 정말 양밖에 없다. 오오 양의 나라 뉴질랜드여. 양들의 엉덩이에서 벗어난 내 첫 번째 여행지는 테카포 호수Lake Tekapo였다.     


테카포 호수


호수를 봤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

내 눈이 미쳤거나, 호수 색깔이 미쳤거나.     


호수 색깔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호수의 색이 아니었다. 약간 에메랄드를 녹여서 우유랑 잘 섞어서 다시 그걸 굳혔을 때 나오는색이라고 해야하나. 그것마저도 신기한게 멀리서 볼때는 참 우윳빛 섞인 에메랄드색인데 가까이서 보면 또 투명색으로 맑다. 요놈 참 사람 홀리는 호수구나 싶어서 한참을 걷다가 지금까지 한 끼도 못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Yelp 어플을 켜서 근처 식당을 평점 순으로 정렬했다.


위쪽에 위치한 별점 높은 집들을 검색하니,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도 꽤 유명한 식당이라고 나왔다. 우리가 바로 누군가. 배달의 민족이지 않은가. 배달 음식 하나를 시켜도 별을 하나부터 다섯 개까지 구분해서 그 맛의 차이를 섬세하게 평가하는 바로 미식의 민족. 그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머나먼 뉴질랜드 어느 한 마을의 식당이다.     


뉴질랜드에서 제대로 먹는 첫끼,

그 유명하다는 맛집을 안 가고 그 바로 옆집을 갔다. 청개구리 심보랄까. 뭔가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은 맛집보단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옆집 식당이 더 끌렸다. 간판도 낡은게 더 괜찮아보였다. 묵직한 문을 밀고 들어가니 점원이 반가운 미소로 나를 맞이해준다. 호숫가가 보이는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아 스테이크와 햄버거를 시키면서 점원에게 식사가 끝나면 자리에 앉아서 계산서를 달라고 하면 되는지, 아니면 카운터로 가서 직접 계산을 하면 되는것인지 물었다.     



“사실 뉴질랜드에서 처음 먹는 식사라 그런데, 밥 다 먹고 나면 체크를 달라고 해야해요, 아니면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면 돼요?”     


점원은 인자한 미소로 나를 3초정도 쳐다보더니,     


“둘 다 상관 없어. 테이블 번호를 받으면 가서 계산하는게 보통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체크 달라고 해.”     


그리고 이어서 점원이 물었다.     


“혹시 누구 와?”

“아니요, 왜요?”     


점원이 두 손가락을 피고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스테이크, 햄버거… 아니, 밀을 두 개 시켜서.”

“아, 아까 말씀드렸듯이 사실 이게 첫끼라서…”     


이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아무리 봐도 또 먹고싶다.


“혹시 다 먹고 남으면 박스 부탁드려도 되죠?”

“당연하지~~~ 그럼 투 밀!!”     


나는 음식을 맛있게 다 먹었고,

물론 박스는 필요하지 않았다.




뉴질랜드 여행 둘 째 날, 아침에 일어나서 체크아웃 전, 침대에 누워 다음 마을까지 가는 중간에 들를만한 여행지가 있는지 검색했다. 푸카키 호수Lake pukaki와 아오라키 마운트 쿡Aoraki/Mount Cook에 있는 후커밸리 트랙Hooker Valley Track코스가 눈에 띄었다. 푸카키 호수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 후커밸리 트래킹 코스는 이름이 좀, 아 이게 좀,


음.. 뭐랄까.


누군가가 나중에 나에게


"뉴질랜드 여행 둘째날 어디 다녀왔어?”

라는 물음에 내가 이 트래킹 코스의 이름을 당당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대답하기가 조금은 민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 머리 위에 있는 갓을 고쳐쓰고 헛기침 한번 내 뱉고 이름의 유래를 검색해봤다.    


우선, 후커밸리트래킹 코스가 있는 아오라키 마운트 쿡은 19세기 영국에서 탐험가이자 항해사로 활동했던 제임스 쿡James Cook 대령의 이름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앞에 붙은 아오라키Aoraki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이 사용하는 언어인 마오리어로 ‘구름을 뚫는 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말 단어 그대로 구름을 뚫을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자, 이제 당당하게 나는 “여행 둘째 날, 마오리어로 구름을 뚫는 산인 아오라키 산을 다녀왔어!”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음 과제가 남아있다.  


"그 구름 뚫는 산에서 뭐 했어?”     


다시 구글을 열고 적었다.


‘Hooker Valley track etymology’


구글은 친절하게도 사용자 성인 인증을 위에 걸어보이며 아,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구나 하는 공감을 간접적으로 해주었고 설명이 나와있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후커밸리 트랙은 영국의 식물학자인 Sir William Jackson Hooker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나와있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이름인가. 윌리엄 잭슨 후커 경. 역사 공부가 이래서 중요하다.     


자칫 불순해질 뻔 한 후커밸리트랙


이제는 당당하게 그곳을 갈 수 있다. 가뿐한 마음으로 일어나서 준비해 푸카키 호수부터 찾았다. 그리고 푸카키 호수는 연어를 먹으면서 봐야한다는 수많은 후기들을 따라 호수 옆, 칭찬이 자자한 연어가게 찾았다. 32불이었다. 나는 주인 아주머니께서 잔돈을 쉽게 계산해주실 수 있게 52불을 드리며 말했다.     


“8불만 거슬러 주세요.”

“뭔 소리야, 너 52불 줬어.”

“아 맞다. 그럼 18불만 주세요.”

“52불 줬다고.”

“아 죄송해요. 20불 주세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나는 쌀집 계산기가 없으면 단순한 산수조차 못하는 회계학과 출신이다. 세무사 1차도 통과했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시는 가게 아주머니의 시선을 피해 민망한 기류를 없애려 음료수를 하나 집어 들었는데, 들자마자 그만 미끄러져서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찌그러졌고, 나는 한껏 더 후끈해진 가게 분위기 한가운데에 서서 말했다.     


“저 평소에는 안 이래요.”     


아주머니가 답했다.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나는 차마 오늘 후커경의 어원을 찾아내기 위해, 오전에 이미 내 모든 힘을 다 했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연어는 인터넷 후기에 나온 것처럼 맛있었다. 근데 사람들이 글에서 묘사한 것처럼 무슨 담백한 맛이 어쩌고 기름진 맛이 어쩌고 빙하 녹은 물에 사는 연어라 뭐가 어떻고는 사실 잘 모르겠고 그냥 연어라서 맛있었다. 이럴때는 아까 바닥에 떨어진 캔처럼 둔탁한 내 입맛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남들이 찍는 구도로 찍어보았다



계절을 잘못 골라, 비록 푸카키 호숫가 근처에 핀 예쁜 꽃 한 송이 못 봤지만, 내가 해보고 싶었던 여행이라 너무 좋았다. 어딜 무조건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던 대학생 때의 전투적인 배낭여행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특별한 일정 없이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몇 십분이나 한 곳에 앉아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양들의 엉덩이도 원 없이 보고, 아까 남은 연어도 꺼내 먹고, 휘태커 초콜렛도 원하는 만큼 까먹고, 이름 때문에 의심스러워서 안 갔으면 절경을 놓칠 뻔한 후커 밸리 트랙도 다녀와보고, 그냥 운전하다가 멈춰서 좋은 풍경 앞에서 책도 읽어보고.     


지나가는 풍경이 낯설어 가끔 자동차를 멈추고 그 풍경이 익숙해질 때까지 바라보면서 마음이 습윤해지기도 하고, 앞에 선행하는 벤츠 자동차가 뿌려대는 워셔액이 내 자동차의 윈드실드에 튀는 것을 보고,“이야! 벤츠 워셔액이다!!”라고 말하며 괜히 와이퍼도 한번 작동해 보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 뉴질랜드 여행을 점점 채워나가고 있었다.     


다음 마을인 퀸즈타운까지 중간중간 여행지와 식당, 멈추고 싶은 곳을 들러가며 하루동안 8시간이 넘게 운전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뉴질랜드에서 운전을 하는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운전대를 잡고 있어서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운전석이 우측에 있어서 도로와 교통질서와 같은 것들이 우리나라와 정반대였다.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우측을 봐야할 때 좌측을 보기도 하고, 그 반대일 때도 많았다. 여행 첫날보다는 익숙해졌지만 그러한 차이들 때문에 더 신경을 써서 나도 모르게 피곤함이 더 쌓이고 있었던것 같다.


퀸즈타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7시쯤이었고, 나는 더 이상의 일정은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 마트에 들러 필요한 음식과 물만 사고 예약한 Airbnb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인상 좋은 호스트인 Pedro가 나와서 나를 반겨주었다. 처음 보지만 마치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본 사람처럼 반갑게,


“찾아오기 힘들었지?”

라고 인사를 해주는 그를 보니, 느낌이 좋았다.


여행을 할 때 늘 그랬던 것 같다. 어느 공간에 머물 때 주인이 친절하면 다소 비좁은 방도 넉넉해 보였고, 음식이 조금 싱거워도 맛이 괜찮았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면 뭐든지 조금씩 더 좋아보였다.     


2층에 있는 방을 안내받고 짐을 정리한 뒤 씻고 나와 푹신한 침대에 누우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몰려왔다. 가뜩이나 Pedro는 나에게 방해가 될까봐 1층에서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있는 2층은 더 조용했다.


이런 방에서 편하게 누워있으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게 정말 내가 여기와서 재미없는 여행만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와 산은 볼만큼 봤으니,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1층으로 내려가서 Pedro에게 물었다.     


“뉴질랜드에서 할 만한 액티비티 같은거 있어?”

“음, 내가 하는 액티비티는 없지만 가끔 여행객들 이야기 들어보면 스카이 다이빙 이야기도 하더라.”

“스카이 다이빙?”

“응. 다들 다음날 아침 일찍 나가는거 보면 근처에 사무실이 있지 않을까?”     


그래, 스카이 다이빙이라면 이 여행의 끝맺음을 장식 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까운 스카이 다이빙 업체 중 자리가 남아있는 곳을 검색해서 예약을 했고, 다음날 아침 그곳을 방문했다.     


사무실에는 긴 의자에 앉아 나처럼 스카이 다이빙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담당직원에게 다가가서 오늘 아침 8시 30분에 예약을 했다고 말을 하니, 지금 이곳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스카이 다이빙을 하려면 대기해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저기 긴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스카이 다이빙을 하기위해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언제쯤 다이빙이 가능하겠느냐고 물었고, 오늘은 확실하지 않지만, 내일은 분명히 할 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나는 오늘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오늘 다이빙을 해야만 했다. 다이빙이라도 하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 지원이에게 역시 노잼인간이 노잼의 나라에서 노잼여행을 하고 왔다는 타박을 들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직원앞에서 미간을 올려서 양쪽 눈썹을 갈매기가 뒤집어진 모양으로 내리고,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다른 공항에서 출발하는 것은 없나요? 저기 지도 보니까 지점이 여러 곳 있던데.”

“여기서 1시간 반 거리인데 괜찮겠어?”

“충분해요.”

“어디 보자, 11시 반에 자리 남아있네. 예약 변경 해줄까?”

“네! 부탁드릴게요.”

“확실하지? 운전해서 갈 수 있어?”

“그럼요!”     


와나카 공항


예약이 변경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퀸즈타운에서 와나카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도착해서 접수를 마치니 직원이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했다. 대기실로 가니 스카이 다이빙을 할 때 입는 일체형으로 된 주황색 옷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었고, 담당자 한명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내 몸보다 사이즈가 두 단계는 족히 커 보이는 큰 의상을 건네며 말했다.     



주렁주렁 옷들



“비행기에서 떨어져 본 적 있어?”

“아니요. 몰아는 봤는데 떨어져본적은 아직 없어요.”

“짜릿할거야.”

“죽은 사람 있어요?”

“Not yet.”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내쉬어지는 직원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는 고도 15,000피트까지 올라가는 경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천천히 상승하며 10,000피트와 12,500피트에서 각각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차례대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는 내가 다이빙을 하는 고도인 15,000피트에 도달했다.     


비행기가 상승을 멈추고 수평비행을 하자, 나와 같이 뛰는 교관은 어떤 끈을 쭉 잡아 당겼고, 나는 교관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그와 가깝게 접지가 되었다. 안전하다고 믿고 싶은 몇 가닥의 끈으로 나와 묶여있는 교관은 내 이마를 손바닥으로 당기면서 뛰어내릴 때 고개를 내리지 말고 이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소 공포증은 없지만, 15,000피트에서 비행기 문이 열려있는걸 보니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 법. 본능적으로 비행기에 남아있고 싶어하는 어느 조종사의 바람과는 다르게, 교관은 육중한 몸으로 나를 조금씩 밀어가며 15,000피트 상공에서 열려있는 비행기의 문으로 찔끔찔끔 이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내 발은 비행기 바깥에 내밀어진 채로 걸터 앉은 자세가 됐고, 비행기 내에 있는 어떤 초록색 불빛이 켜짐과 동시에 뒤에서 외마디 외침이 들렸다.      


“JUMP!!!!”     


낙하를 시작했고, 나는 개구리가 점프할 때와 같이 두손 두발을 대자로 뻗으며 지상으로 빠르게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15,000피트 상공에서 보는 뉴질랜드의 풍경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정확하게 대답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나는 모른다고. 낙하를 할 때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풍경을 볼 겨를이 없었다. 내 코와 입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바람들이 내가 숨을 쉬는 행위를 막고 있었다.


정말 그 짧은 시간에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들은 직원의 ‘Not yet’이라는 말이 정말 ‘아직은 없고 그게 바로 오늘이야.’라는 뜻이었구나.


헐떡헐떡.

습~! 하!     


간절한 나의 바람이 닿았는지 하늘은 내가 여섯 번정도 헐떡이면 한번 정도 숨을 쉬게 해주었고, 나는 그 감사한 공기로 버티며 계속 다음 공기를 마시기 위해 헐떡거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숨을 쉴 수는 없는 법, 스카이 다이빙을 하며 숨을 쉬는 방법이 혹시 따로 있는건 아닌지, 혹시 있다면 내 뒤에 붙어있는 교관은 그것을 알고 있지는 않을지 하는 마음에 나는 대자로 뻗은 왼손을 접으면서 숨이 안 쉬어진다는 의미로 내 코를 가리켰고, 내 뒤에 붙어있는 교관은 내 왼손을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으며 ‘이 자세가 하강할 때 안전한 자세야’라는 메시지가 담긴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막아세웠다.     


‘정말 안전이고 나발이고 제가 숨이 안 쉬어져서 죽을것만 같아요.’


따위의 절망스러운 외침따윈 통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야생의 세계였다. 갑자기 Pedro가 미웠다.


'드로야, 어제 너가 스카이 다이빙 얘기만 안했어도.’


도저히 숨이 쉬어지지 않아 나도 모르게 혀를 내밀었는데, 아니 이게 웬걸. 숨이 잘 쉬어졌다. 강아지가 목마를 때 헥헥 거리며 내미는 바로 그 모양으로 말이다. 유레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개처럼 혀를 내민 상태로 헥헥 거리며 하강을 했고, 숨 쉬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때야 비로소 주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비행기 조종석에서는 칵핏 창문 밖으로만 보이는 1차원적인 풍경이 3D로 내 눈 앞에서 펼쳐졌다. 호수와 산, 도시와 도로. 농장과 양들의 엉덩이. 모든 것이 한눈에 보였다. 물론 혀는 계속 내민 상태로.     


죽기전에 한번쯤은 해볼만한 일


헥헥. 와… 헥헥. 와!!! 헥헥. 쩐다!!! 헥헥. 습. 하.     


그렇게 뉴질랜드 여행을 아름답게 마무리 해준, 내 인생 첫 스카이 다이빙이 끝났다.

혹시 언젠가 스카이 다이빙을 도전 하고싶어 하시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꼭 혀는 내미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다낭에서의 뒷방 부기장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