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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Jan 16. 2022

저 책 나올 것 같아요

제목을 짓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저 책 나올 것 같아요."

"브런치 글을 삭제했습니다. 이유는"

"호재 하나 알려드릴까예?"

"유튜버들이 좋아요와 구독을 외치는 것에 대한 이해"

"책 나오면 사주실 거죠? 제발요. 부탁이 아니라 구걸입니다."


등.


코로나로 인해 반복되는 회사의 휴직 기간 동안, 운동과 글쓰기 말고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나였다. 넷플릭스를 틀어 놓고 어떤 영화를 볼지 2시간을 고민하며 리모컨만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결정하지 못하고 티비를 끄듯, 휴직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잘 보낼 수 있을까 늘 고민만 하다가 결국 휴직기간이 끝나곤 했다.


복직을 하고 나서도 기장님들의 "휴직 잘 보냈어요?"라는 물음에 마땅히 그렇다 할 대답이 없어, 파르르 떨리는 입술 꼬리를 삐죽 올리며 어색하게 웃는 게 전부였다. 20대는  참 열정적으로 꿈을 찾으며 살아왔던 나인데, 서른 두살 코로나 시절 항공인으로서의 내 모습은 정말 아무것도 이룬 것도 없고 한 것도 없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코로나 핑계를 대며 지금은 움츠릴 시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것에 한계를 느꼈을 때쯤, 취미를 결과로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결과로 낼 수 있는 취미라면 딱 두 개가 있다. 운동과 글쓰기.


우선 운동으로 결과를 내려면 무엇이 있을까.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어볼까?

아니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간이고 쓸개고 내어줄 내가 식단을 할 자신이 없다.


그럼 파워리프팅 대회를 나가볼까?

이것도 안된다. 32년 정도 사용한 국산인 몸, 조금씩 삐그덕 거리기 시작하는 걸 보면 아껴 써야 한다.


철인 3종 경기?

국산몸 아껴쓰자.


그리하여 운동은 아름다운 취미로 남기기로 하고,

그럼 글쓰기인데.


책을 내어볼까?

정말 내어볼까?

일단 시도는 해 볼까?


그리고 두드려본 출판사의 문.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묻은 에세이들이 빛을 내지 못하는 요즘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을 좋게 봐준 편집자님이 계셨다. 편집자님을 처음 만났을 땐 벌써 표지까지 생각해봤다며, 나보다 내 글에 더 열정을 보여주시는 모습이 고마웠다. 뭐랄까, 그동안 더 글을 잘 써내지 못한 것에 미안함이 느껴질 정도랄까.


우선 회사에 허락을 받고, 다시 편집자님에게 연락드려 취미로 끝날뻔한 일을 결과로 만들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항공사 입사할 때 입사 계약서 이후 처음으로 나의 사인이 들어간 출간 계약서를 썼다. 심지어 출간 계약서에는 입사 계약서와는 다르게 내가 "갑"으로 지정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좀 단순하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런 거에 괜히 기분이 좋다.


출간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서, 그동안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 있어 편집자님에게 내가 물었다.


"제가 사실 출판업계를 아예 몰라서 하나 너무 궁금한 거 물어봐도 될까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그... 책 나오면 저한테 몇 권 주세요?"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한 내 모습이 웃겼는지, 한동안 웃으시더니,


"스무 권 드려요."

"아, 너무 충분하네요. 혹시.. 교보문고 매대에도 제 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그럼요."


실제 출판까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몸을 갈아 넣어야겠지만,

오랜만에 정말 잘 해내고 싶은 일이 생겼다.


교보문고에서 내 이름이 걸린 책을 죽기 전에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이 편집자님 덕분에 한 60년은 당겨질 것 같아, 너무 다행스러운 2022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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