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비행이 많아졌다. 코로나는 언제였냐는 듯 인천공항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고, 우리 항공사에서만 일본에 하루에 수십 대의 비행기가 들어간다. 그리고 매번 거의 만석에 가까운 여행객들로 비행기는 채워지고 나는 유니폼을 세탁하고 다리는 것에 달인이 되어있을 만큼 자주 출퇴근을 하게 된 요즘이다.
코로나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 유니폼 다릴 일이 있었나, 격달로 휴직을 하는 동안은 그마저도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칼주름이 잡혀있는 유니폼을 보며 나의 다림질 실력에 감탄을 하는 바이다.
비행실력이 늘어야 하는데, 쓸데없이 다림질 실력만 늘고 있으니
언젠가 아파서 비행을 못한다고 해도 다림질만 전문적으로 해주는 가게를 열어볼까 하는 망상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최근 들어 비행에 조금 지쳐있었다. 너무 잦은 출근과 밤을 새워서 돌아와야 하는 동남아 비행 패턴의 연속들. 번아웃, 내지는 슬럼프가 와버린 것이다.
어느 통계에서는 직장인 3년 차 때 가장 슬럼프가 크게 온다고 한다. 그리고 3년, 5년, 7년 주기로 온다고 하는데 부기장으로 근무한 지 3년 차, 그리고 입사한 지는 꼬박 5년 차가 되었다. 하나만 겹쳐야 했는데 3년과 5년이 같이 겹쳐져버리니 이걸 이길 방도가 없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 버린 비행에 예전처럼 탐구심도 줄어들었고 타성으로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매번 비행이 끝나고 실수한 부분을 복기하며 집에 가서 공부를 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집에 오면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tv를 틀어놓고 랜딩비어 한잔을 하는 게 좋았다. 거기에 1층에 생긴 닭집에서 닭똥집튀김이나 옛날통닭 한 마리 사 오면 극락이 따로 없었다. 요새는 집 앞에 생긴 야키토리 집에 가서 혼자 한 잔 하다 보면 맥주는 어쩌면 만병통치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이런 내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닮고 싶은 기장님과의 식사 자리였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장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부기장에 대한 기대치가, 망고에게 기준이 맞춰져 버려서 큰일이야."
나에겐 너무 과분한 칭찬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감사함을 느꼈을 말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저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
게다가 나에게 저런 말씀을 해주신 기장님은 비행 생활이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끊임없이 비행을 공부하고 연구를 하신다. 이미 조종사가 되기 전부터 비행을 너무 사랑하셨고 조종사가 되기 위해 힘들게 걸어오신 길을 알기에, 기장님에게 "비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비행을 대하는 자세가 그렇지 못한 것에 더욱 부끄러웠다.
그런 분에게 저런 칭찬이라니.
순간적으로 얼굴에 올라오는 화끈함에 마렵지도 않은 소변을 해결하고 오겠다며 일어났다.
그렇다고 구구절절 슬럼프가 왔고, 그토록 사랑했던 비행이 예전만큼 재미있게 느껴지지가 않고, 상황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설명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런 설명은 내가 공부하고 있지 않은 나태함에 대한 합리화와 변명일 뿐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앞으로 이렇게 할 것이다, 할 예정이다.'라는 말보다는
'이렇게 했다. 해내었고 힘들었다 뿌잉뿌잉.'이 훨씬 낫다는 사실이다.
잘 이겨내고,
어느 날 기장님과의 또 다른 술자리에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잘 이겨내서 다시 재밌게 비행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얼마 전,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을 일이 있었다.
조종사는 통상 1년에 3번 정도 시뮬레이터를 탄다. 정기 훈련 두 번과 LOFT라고 불리는 훈련. 훈련을 받아야 할 조종사는 많지만 시뮬레이터의 개수는 한정이 되어있기에 24시간 돌아간다. 그리고 새벽에 시뮬레이터를 탈 일이 있으면 회사에서 정해준 호텔에서 쉬다가 훈련소로 향한다.
시뮬레이터 센터로 가기 위해 호텔 1층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같은 곳으로 가는 외국인 교관님을 만났다. 그분은 Airbus 380을 담당하는 시뮬레이터 교관님이었고 캐나다 사람이었다. 같은 택시를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슬럼프 이야기를 했다. 친한 기장님들에게도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가끔은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날. 앞으로 다시 볼 일이 없지만 그냥 진지한 이야기를 내뱉고 싶은 날, 딱히 해결해 달라는 뜻은 아니고 내 생각을 밖으로 꺼내고 싶은 날.
내가 선택한 길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그렇게 즐겁던 비행이었는데 요즘은 왜 출근을 하는 순간부터 퇴근을 하고 싶은 건지.
그러자 그분이 말했다.
"비행생활은 얼마나 됐어?"
"3년 조금 넘었어요."
"그래?"
한동안 생각을 하더니 기장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비행생활을 35년을 했거든."
"35년이요??"
35년의 비행생활이라, 내가 살아온 햇수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큰 사고 없이 안전하게 비행을 했고, 매년 자격 유지를 하는 시험과 신체검사들을 다 거쳐 왔다는 세월을 들은 난, 놀란 눈으로 다시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응 내가 35년 동안 비행생활을 하면서 나도 번아웃이 몇 왔지."
"기장님은 번아웃이 왔을 때 어떻게 하셨어요?"
"그냥 비행했어. 평소처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나아지더라고."
"기장님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그럼. 라인에서 여객기를 모는 것은 복권에 당첨된 것과 비슷한 일이야."
"복권에 당첨됐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은 당첨된 순간이야. 그리고 점점 익숙해지지. 나중에는 기분이 복권에 당첨되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을걸?"
"그 익숙한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 복권에 당첨되고 싶긴 하네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복권에 당첨된 것이 감사한 날들이 다시 올 거야. 비행도 똑같지."
그리고 한쪽 손을 본인의 어깨에 올리며
"우린 복권에 당첨된 거야. 지금 너 스스로에게 충분히 자랑스럽다고 생각해도 돼. You should be more proud of yourself."
내가 살아가면서 이렇게 큰 복권에 당첨될 일이 몇이나 있을까.
이미 당첨된 복권에 배부른 소리만 하고 앉아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한가.
비행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뀐 것이 아니다. 그저 비행을 사랑하는 감정에 내가 익숙해진 것일 뿐. 새로운 것이 가득했던 처음과 달리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캐나다 기장님 말씀대로 익숙해졌을 뿐, 이 일은 여전히 내가 놓고 싶지 않은 일이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슬럼프 극복 방법이 있겠지만, 사랑했던 일에 내가 처음 느꼈던 감정을 생각하고, 그 일이 싫어질 이유가 없이 마음이 변했다면 그저 익숙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 기다리면 된다.
마치 주식처럼,
펀더멘탈에 문제가 없는 회사의 주가가 떨어진다면 추매를 하다 보면 언젠간 올라간다.
근데 왜 내 종목은 그렇지 않은ㅈ...
아니,
내 주식계좌 잔고도, 비행 생활도 추매를 하는 기간인가 보다.
펀더멘탈에 변화는 없다.
이렇게 꾸준히 어제보다는 나은 내가 되면 되지 않겠는가?
오후 6시 13분,
그렇게 나는 오늘 간단한 저녁을 하고 비행과 관련된 자료를 펼쳐놓고 공부를 시작한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말이다.
'Speed control instruction shall remain in effect unless explicitly ......'
아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너무 열심히 공부를 했다.
시계를 봤다.
오후 6시 27분.
무려 14분을 공부했다.
그것도 슬럼프 기간에 말이다.
조용히 나는 또 디즈니 플러스를 튼다.
요즘 "더 베어"가 그렇게 재밌더라.
미드는 영어공부니까,
공부는 놓지 않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