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공항이나 가자
비행을 시작하기 전, 여행을 좋아해 이곳저곳 웬만하면 다녔었는데 그때 여행을 하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공항에 일찍 가는 버릇이다. 특히 여행을 떠나는 날은 도무지 설레서 좀처럼 집에 앉아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공항에 일찍 도착하면 여행의 시작이 당겨지는 느낌도 든다.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고, 널찍한 의자를 골라잡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마냥 설레어 연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사람들, 급하게 도착해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서둘러 체크인 창구로 향하는 사람들, 커다란 피켓을 들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들로 다양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눈물바다다. 이별인지 재회인지 모를 그들은 서로의 체온을 잊어버리기 싫은 듯 두 팔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시작과 끝이 동시에 있는 이곳, 일찍 오길 잘했다는 생각에 흡족해하며 커피를 넘기는데 옆에 있는 남자가 말을 건다
“여행 끝?”
“응, 이따가 두바이 들러서 서울로 돌아가.”
“몇 시 비행기야?”
“4시 45분.”
그때가 12시 조금 넘었을 때였기에,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물을 줄 알았던 그의 다음 말은 뜻밖이었다.
“사람 구경하는 거 재미있지 않아?”
“응?”
“나도 4시 45분 두바이행 비행기야.”
아니 도대체 무슨 영문이길래 4시간이나 일찍 왔는지 궁금해서 도리어 내가 물었다.
“진짜? 근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나도 공항을 좋아하거든.”
이야기인즉슨, 사람들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혼자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변태처럼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이놈은 분명히 공항을 즐기러 온 놈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도 공항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건 다른 곳과 다름없지만, 공항은 여느 장소와는 달리 감정이 조금 더 짙은 곳이기 때문이란다.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 감정을 숨기고 싶어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좀처럼 숨겨지지 않는 곳, 그렇게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도 이상하게 보는 이 하나 없는 곳.
그가 말을 잇는다.
“이래서 난 공항이 좋아. 뭔가 거짓 없는 느낌이거든.”
그 말을 듣곤, 그렇게 말하는 그 또한 거짓 없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웃자 그가 말을 잇는다.
“나중에 두바이 놀러 오면 연락해. 내가 구경시켜줄게.”
“같이 공항이나 가자.”
내가 개구지게 웃으며 말하니,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두바이는 공항보다 더 멋진 곳이 많다며 자랑 일색이다.
다음에 두바이에 놀러 간다면 그 친구에게 꼭 해줄 말이 생겼다. 두바이에 오기 전에도 공항에 조금 일찍 왔다고. 이번에는 사람 구경보다는 당신 같은 친구를 또 만날까 싶은 기대감에 일찍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