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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델리

발음에 대하여

by 망고 파일럿



엘에이에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비행을 하러 갔었다. 공항에 내린 뒤 우버를 타고 시내로 나왔었다. 엘에이와 사뭇 다른 분위기의 시내를 구경하며 다니는데 조금 낯선 간판이 보인다. 아, 그전에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평소에 발음하기 어려워 보이는 간판을 엉터리로 부르는 건 어느새 취미가 되어 있었다. 예컨대, Auntie anne’s를 앙티 안느라고 발음을 하기 시작한 건 런치박스라는 영화를 본 이후였다.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윗집 할머니를 부를 때 “앙티”라고 구수하게 부르는데, 그 이후에 Auntie간판만 보면 여주인공의 억양과 발음이 생각났다.

물론 지나갈 때마다 실제로 소리를 내서 읽진 않았다. 그럼 너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테니까. 아무튼, 오늘 지나가던 나의 발길을 멈춘 건 어느 한 가게의 전광판이었다. 처음 보는 초콜릿 가게의 이름에 저건 어떻게 발음하지, 하며 고민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속어 느낌이 났다.

‘지… 지랄델리?

아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초콜릿 집 이름이 지랄델리라니, 내가 틀렸겠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도 없었다. 머리를 식히고 다시 생각을 시작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비속어 느낌이 물씬 섞인, 나아가 한국말과 인도어가 적당히 섞인 느낌의 욕이었다. 만주델리도 아니고 지랄델리라니.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달콤한 초콜릿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멀리서 서있는 직원은 초콜릿만큼 기분 좋은 미소로 손님들을 반긴다. 대충 둘러보고 적당한 초콜릿을 집어 들어 직원에게 갔다. 계산을 하면서 간판을 어떻게 읽는지 자연스럽게 물어볼 심산이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Ghirardelli는 어떻게 발음하는지 슬쩍 물어보니, 중후한 저음으로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발음이 나온다.

“기라델리”

기라델리라니, 이 얼마나 고급스러운 이름인가. 심지어 나중에 찾아보니 세계에서 꽤 유명한 초콜릿 집이었다. 그런 가게의 이름을 나는 도대체 어떻게 부른것인가. 부끄러움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좋은 것 하나 배워서 기분이 좋다. 새로운 단어를 배운 느낌이다. 역시 여행은 언제나 옳고, 언제나 배울 것이 많다. 배움은 끝이 없다. 다음부터 Ghirardelli 간판이 보이면 반드시 이렇게 읽을 것이다.

“지랄델리”

취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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