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 파일럿 Oct 11. 2020

하늘에서 잔소리



하늘에서 너무 많은 잔소리는 학생에게 도움되지 않으므로, 위에선 중요한 것들만 짧고 간단하게 지적하고 교육비행이 끝난 후에 지상으로 내려와 디브리핑에서 자세하게 얘기하곤 했다. 허나 1시간이 넘는 교육비행 동안 학생이 실수한 걸 다 기억하는 것도 꽤 벅찬 일, 잊지 말아야지 하며 아이패드에 이야기할 것을 이것저것 써 놓곤 했는데, 하필 오늘 터뷸런스가 심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글씨체가 지렁이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써가며 ‘내려가서 이거 이거 이야기하고, 이건 그림 그려주면서 설명해야겠다.’며 다짐했는데, 내려와 보니 이건 뭐 사람 글씨라기보단 암호에 가까웠다.
 
내가 쓴 암호를 해독하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터뷸런스의 힘을 얻어 꽤 정교하게 암호화된 글씨는 풀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중 가까스로 내가 해독한 건, ‘밖’이라는 글자와 ‘turn’ 그리고 ‘비람’. 마지막은 아마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자의 조각들로 전체의 내용을 추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내 앞에서 잔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며 눈을 껌뻑이는 학생이 보인다.
 
“오늘 비행 대체적으로 괜찮았고… 밖… 아 그래요. 밖을 많이 봐야 해요. 이건 시계비행이니까. 계기에 집중하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turn… turn… 할 땐… 아 그렇죠. Rudder도 같이 차야죠. Coordination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리고… 비람… 아니 바람… 바람이 뭐지… 아! 그래요. 측풍이 불편 crabbing을 해야 flight path를 지키죠.”
“알겠습니다.”
 
내가 해독한 암호 외엔 다른 단어는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이것저것 적은 건 많은데.
 
“그리고 나머지는…….”
“나머지는요?”
“나머지는… 좋았어요. 내일 다시 비행 잘해봅시다.”
“네 교관님. 내일 뵙겠습니다.”
 
다음에는 펜이라도 들고 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랜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