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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Jun 23. 2021

경력직 부기장이에요?

다낭 이야기 둘

전편 : 다낭 이야기 하나


시장거리를 곱게 갔을까?

그럴 리가 없다.

늠름한 나의 뒷방 어미 오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나를 키우지 않았다.


다낭이 처음이라는 나를 위해 뒷방 부기장님은 바로 시장거리로 가는 직선적인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낭에서 유명한 콩 카페를 들르는 것을 시작으로 그 여정길을 열었다. 이 두근거림은 원정대와 머나먼 미지의 여행을 떠났던 호빗만이 이해할 것이다. 마치 가이드처럼 내 앞에서 듬직한 어깨를 들썩거리며 걸어가시는 뒷방 부기장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묘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비록 훈련생이지만 나 또한 언젠가 훈련이 끝나고 부기장이 되어 누군가의 뒷방 부기장으로 다낭을 오게 된다면 저렇게 열정적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까.


어느 정도 걸어가니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길거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골목길을 파고드니 콩 카페가 보인다. 유리창문으로 바깥세상과 카페를 경계 지어 놓은 우리나라 카페들과는 달리 콩 카페는 모든 것이 오픈되어 있었다. 카페 안에 있으면 소란스러운 바깥 소음이 들려왔지만 사람들의 대화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그 유명하다는 코코넛 연유 커피를 시켰다. 메뉴를 주문하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그런 나와는 달리 뒷방 부기장님은 오로지 메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보다 못한 내가 도로변이 보이는 자리를 가리키며 혹시 저 자리는 어떻겠느냐 물었다.


“기장님, 저 자리에 앉을까요?”

"오늘 우리 갈 곳이 많아요."


아차,

나의 그릇된 욕망과 조급함으로 뒷방 부기장님의 계획에 생채기를 낼 뻔했다. 응당 처음 가는 곳은 자주 가는 사람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주고, 처음 가는 식당을 가면 자주 가는 사람의 메뉴를 따라 시켜야 한다는 나의 여행 철학에 반하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어디 감히 여정길에 카페에 느긋하게 앉아 커피를 즐길 생각을 했을까. 가당치도 않다. 나는 곧 나의 실수를 자책하며 말했다.


“혹시.. 앉아서 인증샷 하나만 남기면 안 될까요?”

"아이 그럼 당연~ 남겨야지~"


융통성이 아주 없는 분은 아니었다.


간신히 건진 인증샷


아무튼 그렇게 다낭에 왔다는 인증사진 하나 남기고 바로 출발한 다음 장소는 목적지인 시장거리가 아닌 가짜 명품샵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생전 보지도 못했던 여러 명품 제품들이 진열대에 깔끔하게 준비된 채 다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명품을 사본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나는 이런 제품들을 아무리 봐도 별 감흥이 오지 않았지만 같이 간 뒷방 부기장님은 달랐다.


실제 진품과 어떤 디테일이 다른 지부터 시작해서 박음질, 마감 등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정도 관찰과 애정이면 혹시 본인이 이걸 만드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진품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가품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설명들을 하셨는데 사실 잘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내 앞에서 명품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시는 뒷방 부기장님을 두고 관심이 없는 티를 낼 순 없었다.


해주시는 설명에 열심히 끄덕거리고 간 다음 곳은 목적지인 시장거리가 당연히 아닌,

두 번째 가짜 명품샵이었다.


이번에는 첫 번째 가짜 명품샵과 이번 가짜 명품샵의 신제품 차이, 퀄리티 차이 등을 비교하며 어느 제품은 어느 샵이 좀 더 낫다 등의 이론을 배우는 자리였다. 마치 첫 번째 가짜 명품샵에서 제품의 디테일을 배웠다면, 이번 가게에선 제품의 차이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다. 물론 이 강의가 싫진 않았다. 다만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나는 이 바느질이 저 바느질이랑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는 눈이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그렇게 또 10분 정도를 강의를 듣고 간 다음 곳은 최종 목적지인 시장거리가 또 아닌,

세 번째 가짜 명품샵이었다.


이번엔 심지어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Hey~ Mr. 정~"


???


가게 점원이 뒷방 부기장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고, 뒷방 부기장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음 한번 지어주고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뭐지? 어떻게 이름을 알지?


이쯤 되니 혹시 뒷방 부기장님이 다낭 가짜 명품샵 총괄 대표 정도 되는 사람인가 싶어,


"방금 점원이 기장님 알아본 거 아니에요?"


라고 내가 물으니,


"아~ 자주 와가꼬~"


하고 쿨하게 넘기신다.


그렇게 우리는 두 개 정도의 가짜 명품샵을 더 들른 뒤 시장거리로 향했다. 사실 마지막 가짜 명품샵에 들렀을 때는 나 또한 어깨너머 배우고 귀동냥으로 들은 이론이 좀 있는지라, 뒷방 부기장님에게


"아, 이건 두 번째 샵에 있던 제품보다 훨씬 마감이 괜찮은데요?"

"이제 쫌 알아보네."

"심지어 가죽이 좀 더 빳빳한 게 들기 편한 것 같아요."


나의 분석에 기특하다는 눈빛을 보내시며,


"혹시 경력직 부기장이에요?"

"신입이에요."


칭찬을 받으니 나의 센들이 펄떡거리며 활성화 되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돌고 돌아 어렵게 도착한 시장거리. 한 시장(Han market)이라는 곳이었다. 1층에는 주로 음식이나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고, 2층에는 원단이나 옷 같은것들을 팔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거리 같은데 좀 더 현지 분위기 물씬 풍기는 그런 곳이었다.


보이는가, 이 야생의 도로가




가짜 명품샵에서 벗어나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신이나서 구경을 하는데, 어느순간 옆에서 뒷방 부기장님께서는 뒷짐을 지고 나와의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요건 천 원."

"천 원이요?"

"응응 요건 오백 원."

"아니 기장님 가격까지 어떻게 다 아세요?"

"에이 내가 한 달에 다낭을 몇 번을 오는데."

"다낭 베이스 아니시죠?"


매장 직원을 따라,

아니,

가이드를 따라,

아니 아니,

뒷방 부기장님을 따라 2층을 다 구경하고 1층으로 내려와서 매대에 진열되어있는 간식거리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다낭에 처음 왔는데 뭐라고 하나 사가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무언가를 사오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여행지에 가면 꼭 자기 흔적을 남기고 돌아오는 여행객들이 있다. 현지인들이나 그 나라에 방해가 되지 않고 존중하는 선에서 흔적을 남기고 오는것은 찬성이다. 그것 또한 여행의 묘미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컨대 문화유산이나 보호받아야할 문화재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오는 행동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지를 다녀온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방해하지 않고도 여행지를 다녀온 티를 낼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한 끝에 만든 습관이 있다.


현지에서만 파는 음식이나, 가죽 패치, 혹은 현지 화폐를 가져와서 모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집에 와서 과자 봉투를 보거나 집에 있는 대형 세계지도에 붙인 가죽패치를 보거나 지갑에 있는 현지 화폐를 보면 여행지가 생각나고 그곳을 다녀왔다고 당당히 이야기 하는 증거가 있으면서도 그 여행지를 훼손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이번 다낭에서는 코코넛 과자를 사보는것으로 나의 첫 다낭을 기념하기로 마음 먹었다.


매대에 즐비한 코코넛 과자들을 보고 있었다.

이런 나의 관찰을 보고 뒷방부기장님은 쉽게 지나칠 리가 없었다.


"내가 코코넛 과자 짝퉁 하고 진퉁 구별법 알려줄게."

"얘네도 가짜가 있어요?"

"자 요 봐봐요. 여기 옆에 은색이면 짝퉁, 투명이면 진퉁."

"아 그래요?"

"은색이면 뭐?"

"짝퉁이요."

"투명은?"

"진퉁."

"잘하네. 경력직이에요?"

"다낭 처음 왔어요."


다시금 나는 경력직 버금가는 정답을 외치고 칭찬을 받은 뒤에야 시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시장이 끝이 아닌 용다리가 보이는 한 강도 가고, 유적지처럼 생긴 어떠한 건축물도 다녀왔다. 혹시나 강물에도 짝퉁 진퉁이 있나 기대했지만 강의는 이어지지 않았다. 뒷방부기장님 덕분에 다낭을 휘젓고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호텔방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비행으로 인한 피로와 조금 다른 피곤함으로 침대에 파고들었고 누워서 하루를 정리해봤다. 근데 하루를 다시금 복습해보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몰려왔다. 과연 가짜 코코넛 과자와 진짜 코코넛 과자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몇이나 될까. 아니, 심지어 코코넛 과자에도 가짜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코코넛 과자는 가짜와 진짜를 포장으로만 구별법을 배우는것에 정신이 팔려 과자를 못 사와서 맛 차이를 못 느껴본 게 조금 아쉽지만, 다낭이야 뭐 회사 스케줄이 또 나오면 올 수 있는 곳이니 크게 중요치 않았다.


그날은 기분 좋게 푹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쇼업 시간에 맞춰 호텔 로비로 내려갔고, 이어서 같이 비행을 가는 객실승무원분들과 뒷방부기장님, 교관님이 내려왔다. 우리는 크루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고, 크루버스를 타러 가는 나의 발걸음이 왠지 가벼워 보였는지 나를 보고 교관님께서 물으셨다.


"쌀국수 먹었어요?"

"먹었습니다."

"커피는?"

"콩 카페 가서 코코넛 뭐시기 마셨습니다."

"잘했어요."


내가 말을 이었다.


"코코넛 과자 짝퉁 진퉁 구별법도 배웠습니다."

"다낭에서 할 수 있는 거 다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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