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전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장님에게 나의 소개를 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스케줄은 시작됐다.
“나이는 서른 두 살이고, 아직 미혼이며, 사는 곳은 어디이고, 비행은 미국 서부 어디어디에서 했고 솰라솰라~”
나의 비행 경력에 대해서 말씀드리던 중, LA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비행했다는 나의 말에 기장님께서는 당신 또한 예전에 우리나라 타 항공사에 계실 때 자주 갔던 지역이라면서 반가움을 표해주셨다.
우리의 미국 추억 회상은 비행기 내에서도 계속되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유학생 시절이라 99cents 상점에 가서 물건들을 샀던 이야기, 노을 질 때 하늘의 색이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이야기, 하숙집 주인이 여행을 가서 집이 비었을 때 사람들을 초대하여 마당에서 고기를 구어먹던 이야기 등. 또 자연 경관은 어떤가. 요세미티 국립공원,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영화 라라랜드에 나온 그리피스 파크 천문대와 HOLLYWOOD 간판이 세워져있는 할리우스 산, 그리고 해질녘 평온하기 짝이 없는 라구나 해변과 헌팅턴 해변 등.
우리는 그렇게 잠깐 추억에 젖어 미국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도 LA 노선이 있으면 좋을텐데.”
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게요 기장님, 우리회사 오시기 전에는 LA 자주 가지 않으셨어요?”
“LAX(LA 국제공항) 많이 갔지. 가서 쇼핑도 많이 하고 여행도 참 많이 다녔어.”
“LAX 진짜 예쁘죠. 저도 세스나 타고 가봤는데 그때 봤던 국제공항 불빛들에 대한 감동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LAX를 갔었어? 세스나를 타고?”
“네. 근데 그때 정말 제 비행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LAX,
Los Angeles 국제공항은 세스나 같이 작은 경비행기들이 자주 드나드는 공항은 아니다. 애초에 세스나를 타고 LAX 공항을 갈 이유도 많이 없다. 개인용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자주 다니는 미국사람들이 타지에서 LA로 놀러온다고 했을 때 바쁘고 복잡한 국제공항보다 훨씬 더 절차도 간소하고 크기도 작은 로컬 공항들이 LAX와 멀지 않은곳에 즐비하기 때문이다. 공항에 2분에 한 대씩 내리는 여객기들의 착륙 속도(보통 비행기가 안전하게 낼 수 있는 범위내의 최저속도)는 내가 탔던 세스나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보다 빨랐다. 모든 면을 따져봐도 세스나에겐 그 공항은 갈 이유보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산더미처럼 더 많은 공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AX는 언젠간 모든 규정을 다 지키며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생기면 꼭 가보고 싶은 공항이었다. 원래 가지 말라면 더 가고 싶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싶은 청개구리같은 마음이랄까. 훈련소에서 "동작그만!" 이라는 교관의 불호령에 갑자기 볼과 이마가 간지러오기 시작하던 나였다. 게다가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곳저곳 돌아 다니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LAX만큼 크진 않지만, Santa barbara나 San jose 국제공항같은 어려운 공항으로 실수 없이 비행을 해낸 뒤 오는 뿌듯함은 짜릿했다. 그 중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LA 국제공항을 찍고 오면 그 짜릿함은 배가 되지 않을까? 나중에 언젠가 큰 비행기를 몰게 되면 국제공항들이야 지겹도록 가게 되겠지만 세스나로 간다는 건 좀 다른 이야기니까. 비행 유학 생활 10개월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교관을 잘 만난 덕도 있고, 날씨 운도 좋아서 학생 조종사로서 딸 수 있는 자격증은 다 소지 한 상태였다. 약 300시간 정도를 타며 어느 정도 내가 타고있던 세스나라는 비행기가 익숙해졌고, 300시간을 쌓는 동안 내가 비행 했던 공항 주변의 공항들은 웬만하면 다 가 봤었고, LAX만큼은 아니지만 바쁘다는 작은 국제공항들은 숱하게 가봐서 자신감도 조금 올라와있는 상태였다. 경험은 용기를 주고, 실력은 자유를 준다. 이것은 내가 학생 조종사 시절에 비행을 하면서 느낀 생각이었다. 실제로 많은 공항들은 다닌 경험들은 내가 더 큰 공항으로 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절차나 법규상 위반 없이 그 공항에 무사히 갈 수 있는 실력은 나에게 어느 공항이든 아무 때나 가고싶을 때 갈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LAX라고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나의 개인적인 욕심과는 별개로 세상에서 가장 바쁜 공항중 한 곳이어었기에 관제탑에 전화를 걸어 가장 바쁘지 않은 시간대를 알아보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세스나를 타고 LAX로 가기로 마음먹은 날, 설레는 마음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사전에 생각한대로 가기 전 LAX 관제소에 전화를 걸어 가장 바쁘지 않은 시간을 물었다.
“안녕! 세스나 172 기종을 타고 너네 공항에 갈 건데 교통에 방해되지 않는 적당한 시간이 있을까?”
“1시면 바쁘지 않을것 같아.”
“오후 1시?”
“새벽 1시.”
새벽 1시, 꿈에 그리던 공항을 가는데 까짓껏 낮잠 실컷 자고 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주기비였다. 시간은 많지만 돈은 없는 가난한 유학생인 처지에서 나는 착륙할 때 내야하는 돈이나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서 주기를 했을 때 내야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같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든든하기도 하고 비용을 나눠 내면 좋으니, 같이 갈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돌아온 대답은 미쳤다고 거길 가느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실수 한번으로 그동안 수천만원을 들여서 따온 자격증을 한순간에 잃을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중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건 SW형이었다. SW형은 나보다 4개월정도 먼저 유학을 와서 학생 과정은 마치고 교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형이었다.
비행도 잘하고 성격도 진중한 편인 형이라면 나눠내는 사람을 넘어서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던데 맞들어준 사람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든든한가.
그 날 밤 8시쯤 형 집으로 가서 같이 공항 차트를 연구했고, 밤 11시쯤 준비를 마치고 비행을 나갔다. 이륙을 하고 LAX 공항에 가까워질 때 쯤 기상정보를 들어보니 바람이 260도에서 불고 있었다. 활주로 24나 25를 사용하겠구나 싶어 차트를 꺼내는데 교신에서 관제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람 방향이 090도로 바뀌었습니다. Santa monica VOR로 직항하시고, 활주로 06R 예상하세요.” 활주로 06R로 바뀌었다는 건, 다시 말해서 바다 위로 날아가다가 해변가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활주로에 착륙 하라는 말이었다. 풍경이 장관이겠구나. 24나 25 활주로를 사용하면 도심 위를 날아오다가 착륙을 하게 될텐데, 이러한 풍경은 다른곳에서도 많이 봤으니 나는 바다 위를 날아오며 활주로에 착륙하는 것이 훨씬 더 멋진 풍경일것 같았다. 신이 난 채로 관제사에게 받은 새로운 지시를 따르며 그 어느 때보다 집중을 하며 비행을 하는데 관제사가 우리를 연속해서 불렀다. “보잉 한대가 추월할 거예요.” “네” “보잉 한대가 더 추월할 거예요” “네” “한 대 더 있어요. 추월할 겁니다” “네” 그렇게 나보다 세 배 빠른 그들을 세 대 먼저 보내고 나니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Visual approach랑 ILS 중에 뭘 선호하십니까?” Visual approach는 밖을 보면서 눈으로 비행기의 자세나 상태를 확인하며 접근 하는 방법이고, ILS는 계기를 보며 정확한 수치에 맞춰 비행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인 여객기는 대부분 계기접근을 한다. 보다 더 정확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스나는 여객기정도의 정확성은 필요가 없다. 대충 비행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비행 경로에서 벗어났을 때 경비행기가 수정할 수 있는 여지가 일반 여객기보다 훨씬 더 넓다. 일단 비행기가 작기도 하고 속도도 느리고, 승객들이 없기 때문에 적당한 착륙 거리내에서 착륙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는 LAX이다. 경차가 덤프트럭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하는 느낌이다. 착륙하고 다시 바로 이륙하고 다시 착륙하고 또 이륙한다 해도 충분한 길이를 갖춘 활주로가 있다.
어떤 접근을 선택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일반 여객기들이 하는 접근을 따라서 해보고 싶었다. 그럼 뭔가 저 앞에 우리보다 먼저 내린 737 여객기를 조종하는 에어라인 조종사랑 같은 어프로치 했다는 뿌듯함도 들것 같고 약간 뭐 그런거 있지 않은가.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지갑 쓰다가 생일날 아버지가 사주신 몽블랑 지갑을 사용하면 괜히 아빠랑 비슷하게 어른된거 같고 자꾸 꺼내고 싶고 친구들한테 내가 산다고 생색내면서 지갑 자랑 하는 뭐 그런거.
“ILS로 접근 하겠습니다” “Roger! Runway 06R, Cleared to land”
꾸웅, 평소보다 잘하지도, 딱히 못하지도 않은 착륙을 하고 나니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는 활주로의 불빛들이 나를 반겼다. 눈이 부셔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였다. 모든것이 신기했다. 속도를 천천히 줄이고 가까운 택시 웨이로 나가니, 집중이 풀리면서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드디어 코딱지만 한 비행기를 끌고 LAX로 왔구나. 시간을 보니 새벽 두 시였다. 바깥이 안 보일 정도로 밝게 주위를 빛내는 온갖 종류의 등불은 중앙선을 따라 가는데 너무 밝아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그럴 만도 하다. 나보다 세배 높은 곳에 칵핏이 있는 비행기를 위한 불빛일 테니 강할 만도. 내 비행기 몸통보다 큰 크기의 엔진을 네 개씩 달고 있는 여객기들도 보인다. 아니, 사실 그런 비행기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만큼 작은 비행기는 없었다. 감격에 겨워 관광객처럼 두리번거리면서 촌티를 내고 있는데 관제사가 말을 건다. “주기는 어디에 하실 거죠?” “Atlantic FBO로 Taxi 요청합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앞에 있는 보잉 따라가세요.” 큰 공항이라 그런지, taxi via J, A 따위의 지시가 아닌 누굴 따라가라는 지시를 줬다. 하기사 공항이 하도 넓으니 택시 웨이 이름으로 지시를 줬다간 공항에서 미아가 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관제사의 말을 따라 나보다 200배나 더 큰 비행기 뒤에 바짝 붙어 어미 오리를 따라가는 새끼오리처럼 졸졸졸졸 쫓아갔다. 저 비행기는 내가 뒤에 있는 걸 알기나 할까. 혹여나 앞에 있는 보잉이 실수로 파워를 조금 많이 넣어 엔진 후류에 내 비행기가 뒤집어져서 바등거리진 않을까 걱정을 하며 따라가는데 옆을 보니 공항으로 이어진 게이트가 보였다. 그리고 게이트에 세워져 있는 대한항공기와 아시아나기가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익숙한 색깔이 반가웠고, 꼬리에 그려져있는 태극기도 반가웠다.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공항에서 한국과 관련된 무엇을 보니 마냥 반가웠던 것 같다. 뭔가 내 편같은 느낌? 지인 한명도 없는 파티를 갔는데 살면서 딱 한번 본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한테 가서 괜히 친한척 하고 싶은 그런거. 흥이 폭발한 나머지 주책맞게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비행기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교신에서 조금 화가 난 듯한 관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Cessna, Standby” 이 공항에 세스나라면 나 밖에 없을 텐데, 앞을 보니 큰 어미 오리, 보잉이 없어졌다. “보잉을 따라가라고 지시했는데, 뭐 하는 겁니까?” 황급하게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니 저기 멀리서 평온하게 taxi를 하고 있는 보잉이 보였다. 형도, 나도, 처음보는 광경에 눈이 팔려 그만 따라가야할 비행기를 놓치고 만것이다. 뭐라고 해야 할지,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제 부주의입니다. 미안합니다. 다시 따라갈까요?” “대기하세요” 눈 앞에 있는 그 큰 보잉을 놓치다니 정말 바보 같았다. 관제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건 꽤 심각한 일이다.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나 때문에 다른 비행기들이 불편을 겪거나 다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국제공항처럼 혼잡한 곳에서는 더더욱. 활주로도 아니고 택시 웨이도 아닌 게이트 옆 어정쩡한 공간에서 어색하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실수해서 혼난 아이가 운동장 한복판에 서 있는 것 마냥.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길을 잘 못 들어 다른 여객기가 못 나온 건 아닌지, 아니, 애초에 괜한 객기를 부려서 이 공항에 오겠다고 한 건 아닌지, 이대로 법률 위반으로 처리되어 조종사 면장(조종사 면허증을 면장이라 한다)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건 아닌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나를 뜯어 말리던 형들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왜 그토록 이곳을 오기 꺼려했는지도 한번에 이해가 됐다. 자책과 포기와 약간의 절망이 번갈아 일어난 지 10분쯤 되었을까, 더 이상 불러주지 않아 이제 내 존재를 잊어버린듯한 느낌이 드려는 찰나 아까 그 관제사가 조금은 누그러진 말투로 말을 건다. “C, B taxi 하고 G에서 hold short 하세요. 공항 익숙한가요? “처음입니다. 근데 diagram(공항 지도)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C, B hold short at G” “택시 웨이 B에 보잉 한대가 보일 겁니다. 보이세요?” “네, 보입니다” “따라가다가 G로 빠지세요” “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었다. 사실 따라가는 건 어려운 지시가 아닌데도 괜히 떨렸다. 한번 실수하면 안하던 실수를 계속 반복할때가 있으니, 정신 바짝차리고 이번엔 말 잘 듣는 새끼오리가 되어 보잉의 엉덩이만 보고 쫓아갔다. 쫓아가는 와중에 다른 비행기들 착륙 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중간중간 곁눈질로만 봐도 찌릿찌릿했다. 긴장이 풀렸나 보다. 다행히 이번엔 별 실수 없이 추가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 헤집으며 다니고 나서야 드디어 우리가 주기할 장소인 FBO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직원이 바퀴를 고정 할 초크를 들고 나왔다. 근데 막상 내 비행기를 보더니 머뭇거렸다. ‘저 조그마한 놈이 왜 여기 있지? 쟤 잘못 들어왔나?’ 하는 표정이었다. 우물쭈물한 동작은 핸드 시그널을 할까 말까 하는 머뭇거림이 분명했다. 내가 주기를 할 것처럼 보이자 그제야 손을 흔들며 위치를 안내해주었다. 안내에 따라 주기를 마치고 비행기 시동을 끄고 내리니 아까 그 직원이 따듯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Welcome to LAX!” “반가워요! 여기 주기비가 얼마죠? 한 30분 정도 있을 것 같은데.” “5,000불이야” “5,000불이요!?” 세상에 5,000불이라니. 아니 저기 일본 어느 국제공항에서 착륙 요금이 150만 원이라는 말은 들어봤는데, 아무리 LAX라도 그렇지 착륙 한번 했다고 600만 원이라니. 이걸 어쩌나, 정말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만큼 입이 내려와서 다물어지지가 않는데 직원이 말한다. “뻥이야.” 뻥이란다. 아오 놀래라. “국제공항이라 진짜인 줄 알았잖아요.” “안으로 들어와서 과일이랑 과자, 커피 좀 먹어” 따듯한 인사만큼 따듯한 말로 반겨주니 기분이 좋았다. 커피는 맛이 없었지만 괜찮았다. 여행할 때도 그랬다. 어느 공간에 머물 때 주인이 친절하면 다소 비좁은 방도 넉넉해 보이고 조금 싱거운 음식도 맛이 괜찮게 느껴졌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면 뭐든지 조금씩 더 좋아 보였다. “근데 LAX는 왜 온 거야? 30분이면 오버나잇 파킹도 아닐 테고.”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공항이었어요. 내 비행이랑 교신이 얼마나 늘었나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고.” “재밌는 이유네.” “최근에 세스나 온 적 있어요?” “세스나라……” 뭔가 추억에 잠긴 듯이 점점 고개를 올려 천장을 보며 없는 기억을 더듬는 듯 했다. “아무래도 세스나는 잘 안 오죠?” “한 2년 전인가, 사람 태우러 누가 온 것 같긴 해. 잘 안 오긴 하지. 올 이유가 없으니까.” 맛없지만 맛있는 커피를 들고 어느 정도 잡담을 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새벽 세시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가야겠어요. 커피랑 과일, 과자 고마워요!” “언제든지!” 힘차게 시동을 걸고 공항 정보를 들으니 어느새 바람 방향이 바뀌었다. 착륙할 때 사용했던 반대 방향의 활주로를 사용한다는 뜻이고, 이번엔 바다 위로 쭈욱 날다가 선회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이었다. 바다 위로 내려와서 바다 위로 날아가게 해 준 바람이 고마웠다. 이륙준비를 마쳤다고 관제사에게 보고하니 오래지 않아 이륙 지시를 주었다. “Runway 25L, Cleared for takeoff” “25L, Cleared for takeoff!” 작은 비행기가 이륙하기엔 무색할 정도로 넓은 활주로에서 최대출력을 넣고 속도를 확인 한 뒤, 이륙 속도에 이르렀을 때 조종간을 당겼다. 부드럽게 떠오르는 비행기에서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몸이 노곤해졌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게도 이렇게나 오고싶었던 공항이었는데, 한바탕 치루고 나니 얼른 집에 돌아가서 따듯한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이륙 후 LAX 공항이 시야에서 조금씩 멀어지니 몸도 마음도 내려앉았다. 비록 비행을 못할뻔한 바보같은 실수를 한 날이었지만, 이것 또한 그 때 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언제가는 이런 경험이 나에게 용기를 줄테고, 나아가서 실력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