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고, 풍경을 좋아하는 풍경 미치광이인 내가 드디어 승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항공사에 입사하면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차마 자기소개서에는 적을 수 없었던 그 다짐, 바로 직원 항공권을 이용하여 다리가 후들거리기 전에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보자는 것이었다.
승무원이 되어서 좋은 32만 개의 장점 중 하나는, 직원 항공권을 이용하여 해외를 보다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외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너 보러 여기까지 왔다며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엄청난 생색을 낼 수도 있다.
한 번은 중학교 동창 재영이가 런던에 있을 때, 생색을 내러
아니아니,
보고 싶은 친구를 보러 런던으로 2박 3일 놀러 갔었다.
2박 3일 런던 일정의 둘째 날,
걷기 좋아하는 우리는 리젠트 공원을 쭈욱 가로질러 프림로즈 힐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리젠트 공원에서 걷는데, 추운 날씨에 반팔 운동복을 입고 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야, 런던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어 재영이에게 물었다.
"재영아, 저분들은 힘들지도 않으신가 봐."
"힘든데 걸으면 추우니까 계속 뛰시는 거야."
"아하."
그렇게 런던에서 친구 덕분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기쁨에 취했을 때쯤 우리는 프림로즈 힐 정상에 올라와있었다.
노을이 지면서 파스텔톤의 색으로 변한 하늘은 예술이었고, 소란스럽지 않게 들리는 다양한 언어의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곳의 분위기를 한껏 다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 더 취했다가는 재영이가 예뻐 보일 것 같아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풍경을 구경하는데, 지나가는 비행기들이 많이 보였다.
아까 재영이에게 배운 것도 있고 하니 나도 뭔가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지나가는 비행기중 한 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재영아, 저 비행기는 이륙 중이게 착륙 중이게."
"오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잠시만."
"응."
서울대를 졸업했고, 숫자를 다루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재영이는, 내가 재영이와의 말싸움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을 정도로 똑똑한 친구였다.
재영이는 신중하게 생각하며 깊은 고뇌와 고찰을 거친 뒤 나에게 말했다.
"착륙 중?"
"이륙 중이야."
"오 왜? 뭐 보면 알 수 있어? 역시 부기장은 다르네."
"그냥 이륙하는 것처럼 생겨서 찍어봤어."
그날 친구 집에서 쫓겨나서 호텔에서 잘 뻔했다.
사실 재영이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대충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저고도에서 비행기의 바퀴(랜딩기어)가 내려와 있으면 착륙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보통 여객기는 이륙하고 정상적인 상승이 확인되면 보통 10초 안으로 바퀴를 접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날개가 평소보다 좀 더 넓어 보인다?
착륙 중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이 조금 더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미리 Flightradar24라는 어플을 사용하면 앞에 있는 항공기가 착륙 중인지 이륙 중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언젠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앞에 있는 비행기로 생색을 내고 싶다면
이 방법을 이용해 보라.
설령 틀리더라도 어차피 옆에 있는 사람이 착륙 중인지 이륙 중인지 정답을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