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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Oct 27. 2021

기장님께서 비행기에서 가르쳐주셨던 것

1년 반 만이었나, 내가 훈련생 때 같이 비행을 한 번 했던 교관님과 비행이 나왔다.


이제는 교관님과 훈련생의 관계가 아닌, 기장님과 부기장의 비행으로서.


처음에 스케줄에 떠있는 기장님의 성함을 봤을 때 너무 반가웠다. 딱 한 번 같이 비행을 해봤지만 그 짧은 비행에서도 나에게 비행 외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감사한 분이셨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가끔 같이 보낸 시간이 오래 지난 친구보다, 짧더라도 같이 보낸 시간이 진한 친구가 더 기억에 남을 때가 있는 것처럼.


비행 당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브리핑실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필요한 서류를 뽑고 비행준비를 하고 있었다. 복작거리는 브리핑실에선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하시는 기장님, 부기장님, 그리고 객실 승무원분들께서 돌아다니고 계셨다. 비행준비를 마치고 우리 기장님은 언제 오실까 기다리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오늘 같이 비행 가는 기장님이셨다.


사실, 브리핑실에서는 여행 다녀온 주인을 오랜만에 만난 강아지처럼 발발거리며 반가워하는 나와는 달리 조금 데면데면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기억하지 못하셨었다. 하기사, 그럴 수밖에 없는것이 벌써 같이 비행을 한 지 1년도 훨씬 넘었고 심지어 지금은 마스크까지 끼고 있으니 못 알아보셨을 수밖에.


아무튼, 우리는 비행준비를 마치고 비행기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내내 기장님과 비행이 나온 것이 좋아서, 기장님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헤벌쭉 웃었더니

기장님께선 옆에서 실실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변태 같아 보이셨는지,

처음에는 약간 이상한 부기장이랑 비행을 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걱정을 하시는 듯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드셨는지 나에게 물으셨다.


"우리가... 혹시 비행해본 적이 있었나요?"

"예 기장님!! 1년 반 전에 저 훈련생 때 기장님이랑 오사카 한번 다녀왔습니다!!"

"오사카?"


고개를 올려 옛 기억을 조금 더듬는 듯 싶으시더니


"아! 기억났다. 우리 그 이후에 시뮬레이터(모든 조종사들이 6개월마다 해야 하는 정기훈련)도 같이 한번 타지 않았었나?"

"맞습니다!! 부기장 되고 나서 첫 정기 심도 기장님이랑 탔습니다 기장님!!"

"아 그래그래, 맞아. 기억이 이제야 나네."


기억이 나지 않았다가는 이 변태 같은 부기장이 계속 옆에서 헤벌쭉 거릴 것만 같았던 것에 대한 걱정이셨을까, 다행히도 기장님께서는 나를 기억해주셨다.


어색했던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하게 바뀌었고, 보다 친근하게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비행 또한 한창 농담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하고 있는데 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그때 겨울에 오사카를 다녀왔었지?"

"네 기장님 ㅎㅎ 기장님이랑 한 번 탔었는데, 그때 참 많이 알려주셨어요."

"내가 뭐라 하디?"


나는 기장님께서 그때 알려주신 노하우들, 지금까지도 내가 비행할 때 실질적으로 사용 중인 것 들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내 말씀을 들으신 기장님께서는 한바탕 웃으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래서 오늘 내 마음에 쏙 들게 비행했구나?"


그렇게 하하호호 분위기 좋게 비행을 하다가,

생각이 나는 말이 있어 기장님에게 말했다.


"근데 기장님께서 가르쳐주신 것들 중에 비행 말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뭔데?"

"칵핏에서는 사소한 숫자, 수치 하나하나에 예민해져야 하고 꼼꼼해야 하는 건 맞는데, 그런 습관을 칵핏 밖으로 가져가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하셨어요.


1년 반 전, 겨울

기장님과 오사카를 가는 중이었다.


내가 타는 보잉 737 기종은 강하를 할 때 일반적으로 280 knots의 속도로 강하를 한다. 따라서 미리 비행 준비를 할 때 그 속도를 입력 해 놓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하강을 시작하면 280 knots로 입력하고 맞춰 놓은 속도가 279 knots로 바뀌어서 하강할 때가 있다. 1 knot 차이라고 해봤자 1.852km/h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아 비행하는데 대세에 지장은 없지만, 뭔가 거슬려서 수정하고 싶은 그런 상황. 그런 상황이 종종 발생할 때가 있다. 쉽게 말해 자동차 크루즈를 80km/h로 걸어놨는데 자동차가 계속 79km/h로 주행하는 것과 같다.


이때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 knot가 빠지더라도 규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강하하는 것. 80km/h로 맞춰놓은 자동차가 79km/h로 달린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속도 창을 열었다 닫아서, 279 knots였던 속도를 정확하게 280 knots로 만드는 것. 자동차의 크루즈를 껐다가 다시 켜서 제대로 맞추는 것처럼.


둘 중 어느 하나를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조종사들마다 선호하는 방식이 다를 뿐.


하지만 나는 후자가 조금 더 마음이 편했다.

우선 내가 처음에 입력한 값이 280 knots였기에 비행기 컴퓨터에 입력된 값과 실제 표시되는 값이 다른 것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리고 279라는 숫자보다, 280이라는 숫자가 주는 깔끔함이 좋았다.

예컨대 친구들과 약속시간을 잡을 때


"야 오후 6시에 보자."

라고 보통 하지,


"야 오후 6시 32초에 보자."

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훈련생이다 보니 나의 선택에 엄청난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조작을 하는 데 있어서 조금은 나 스스로 눈치를 보는 상황, 양 떼 목장에서 털 2년 안 깎은 양 마냥 발발거리면서 그 1 knot를 맞출까 말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때 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거 맞추고 싶지?"

"아.. FMC(쉽게 말해서 비행기의 컴퓨터)에 입력한 속도 값이랑 달라서."

"괜찮아. 그렇다고 지금 틀린 건 아니잖아?"

"아 네 맞습니다.."

"한번 지켜볼까? 달라지는 게 있는지 없는지?"


그 작은 차이는 우리의 도착 예정시간이라든지, 강하 시간이라든지 그 어떠한 것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강하가 끝난 뒤 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망고야, 비행할 때 이런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지?"

"네 교관님, 아무래도.."

"당연한 거야. 우리는 정확하고 보수적으로 생각하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칵핏 안에서는 그렇게 꼼꼼하고 작은 숫자, 수치에 민감해도 좋은데 그게 습관이 되면 나중에 밖에서도 불필요한 일에 너가 예민해질 수도 있어. 그런 걸 경계해야 돼."


정말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뻔했다. 만약 내 가슴에 눈이 달렸다면 내 유니폼은 아주 보기 흉하게 눈물로 젖었을 것이다. 가슴에 눈이 안 달린 게 너무 다행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여하튼,

기장님에게 들은 말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비행을 가르쳐 주시는 교관님이셨지만, 그때 그 말씀을 하셨을 때는 한 명의 어른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모지리 부족한 어린 부기장한테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주시고 싶은 그런 어른.


훈련 때 있었던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신 기장님께서는 조금 멋쩍으셨는지,


"내가 그렇게 멋있는 척을 했단 말이야?"

"아니요. 진짜 멋있으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 1 knot를 맞추냐고?


때에 따라 다르지만 맞추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비행의 다른 부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변화가 나에게 생긴 것이 좋다.


그럼 밖에서 이제 덜 예민해졌느냐고?


기장님 죄송합니다.. 그때의 가르침을 실천하기엔 제가 너무 부족하고 무지몽매하네요....

여전히 친구랑 치킨 먹을 때 친구 놈이 닭다리 두 개 다 가져가면 너무너무 화가 나서 예민 킹 보스가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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