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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Oct 29. 2021

국제선 조종사 vs 국내선 조종사


"국제선 조종사예요? 아니면 국내선 조종사예요?"


나의 직업을 말했을 때 자주 듣는 물음이다. 나는 이 정체모를 질문에 상대방은 관심도 없을 설명을 늘어놓는다.


"아, 그게 조종사가 국제선 조종사, 국내선 조종사로 나뉘는 게 아니라 기종으로 나뉘어서, 해당 기종이 가는 나라는 다 간다고 보시면 되고 블라블라~ EDTO나 특별 인가가 필요한 공항 같은 건 추가 교육이 필요해서 교육을 받은 사람만 갈 수 있고 어쩌고저쩌고~"


이 정도면 올해 세 살 된 나의 친조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정확한 설명이었다고 스스로 자찬하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을 때쯤 들리는 상대의 반응


"그게 뭐예요?"


'그게'에 대한 정확한 범주가 주어지지 않는 이상, 아 이분이 항공 쪽에 문외한이시구나 하며 또 교관 때 학생을 가르쳤던 그 열정이 도져버려 내가 설명한 개념 중 이해 안 갈 것 같은 항공 개념에 대해 다시금 주절주절 설명해드리고 나서


이쯤 되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나의 두 번째 친조카도 알아들을 수 있겠다며 오른손을 들어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완벽한 설명이었어' 하고 자칭하고 있는데


"그래서 국제선 조종사인 거예요?"

"아, 그게..."

"조종사랑 비행사랑은 뭐가 다른 거예요?"

"예?"


비행사는 또 뭔가.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더워서 흐르는 것만은 아니겠구나 싶어, 급히 휴대폰을 들어 비행사를 검색해보니 조종사랑 동의어로 쓰이고 있었다.


"아 지금 사전이 얘기하길, 조종사나 비행사나 같은 단어인 것 같네요."

"그렇구나."


상대방의 궁금증이 해결된 것이라곤 조종사와 비행사가 같은 말이었다는 것일 뿐, 그것을 제외한 그 어떠한 설명도 이해되지 않았다는 게 너무나도 자명한 상태에서 튀어나온 '그렇구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걸 알고 있기에 미안함과 제대로 이해시켜드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날,

비행 중 기장님에게 나의 이런 고충을 말씀드리니


"나도 그런 질문 많아 받아봤는데, 그럴 땐 이젠 그냥 국제선 조종사라고 해요."

"아 그렇습니까?"

"뭐 그렇다고 우리가 국제선을 안 가는 건 아니잖아?"

"그쵸그쵸."


조종사는 국제선, 국내선 조종사로 나뉘지 않고 기종으로 보통 나뉜다. 그래서 어떤 기종에 대한 훈련과 시험을 마친 조종사 면허증 뒤에는 rating이라고 하는 어느 기종에 대한 한정자격이 부여된다. 나로 따지면 보잉 737, 싸이테이션 525 이렇게 자격이 부여되었고 나는 이 기종들에 국제선이든 국내선이든 어떠한 노선이 부여되더라도 웬만하면 다 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승객을 태우기 위한 법적 자격이나 해기종을 운항하기 위한 특정 자격이 있지만 전문성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웃기고 싶은 나의 글의 성격과는 맞지 않으니 일단은 넘어가고.


이러한 부분에서는 운전면허증과 다르다. 보통 운전 면허증이 있으면 테슬라도 운전할 수 있고, 볼보 차도 운전할 수 있고, 벤츠도 운전할 수 있고, 페라리는 운전하고 싶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무튼,

뭐 굳이 따져 들어가자면 운전 면허증 있다고 기중기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랄까.


따라서 만약 내가 조종하는 비행기, 나로 따지면 737 비행기가 국제선 노선을 가면 나는 국제선 비행을 하는 것이고 국내선 스케줄이 나오면 국내선 비행을 하는 것이다.


미국 리저널 항공사 같은 경우는 ERJ, CRJ 등의 비행기로 운항하는데 미국 땅이야 워낙 넓으니 이러한 기종으로 가는 노선이 국내선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그 조종사들을 국내선 조종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국제선 국내선으로 나뉘는 것이 아닌, 해당 항공사가 운영하는 기종의 비행기가 가는 노선은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기장님의 말씀이 궁금해서 여쭤봤다.


"기장님께선 굳이 설명하면 길고 복잡하니까 그냥 국제선 조종사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니지."

"아 그럼 특별한 이유라도..?"

"국제선 조종사라고 하면 괜히 더 있어 보이잖아."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런 혜안이여.

딱 한 번 사는 인생사 멋들어지게 사는 게 최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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