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거리낌 없이, 쨍한 기분으로 '회장님'이라고 지칭했던 분은 아마도 구회장님이 유일했던 것 같다. 대학생들 연수 프로그램 공고하는 포스터를 우리 팀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팀장인 나도 우리 회사도 어떤 날은 트윈타워 지하 1층 강당에 가서 대학생들과 함께 앉아있었더랬다. 인사말을 하시는 회장님은 농부처럼 수더분하셨다. 비서들이나 임원들이 거의 긴장하지 않았고 그룹사의 직원 누구도 경직되지 않았다. 구회장님을 직접 뵌 건 엘베스트에 다닌 두 해 네 번의 그 행사가 전부였다. 심하게 거친 말뽄새를 내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름기나 번들거리는 삼성의 이씨 일가와는 그 격이 너무도 달랐다. 물론 LG의 임원들은 전문 경영인들이어서 몇몇 분을 제외하면 각개의 성격이 달랐다. 그룹의 계열사도 각개가 모두 차별적이었다. 하우스 에이전시를 다니면 그 어떤 위치보다 각 계열사의 성격을 파악하기 쉽다.
옳은 미래
- LG
회장님의 종교는 알지 못하지만 회장님은 꼭 선승처럼 저 위에 계시는데 그 덕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랫동네 대표이사들을 자유방임형으로 키우고 계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보통의 세상이 그렇듯 명민한 사장도 있고, 도전적인 사장도 있고, 까다로운 사장도 있고, 군인 같은 사장도 있었다. 응, 회장님은 암자에 기거하는 큰 종파의 방장 같은 분이셨다. 회장님이 봉하에 보내신 나무 얘길 듣고 조금 눈물이 났다. 회장님은 돌아가셨고 내일은 노대통령의 기일이다.
옳은 미래, 라는 (주) LG의 카피는 일전에 내가 썼던 ‘The Right Future’에서 옮겨와 제안했고 릴리즈 되었을 것이다. 저 카피는 내가 쓴 것이라고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던 건 아마 ‘저 크고 좋은 기업 (주)LG의 카피로 쓰이니 소유권 주장이라도 해야겠어’ 하는 못난 나의 성정 탓이었을 거다. 그리고 저 카피를 훔쳤거나 독창적으로 생각해냈거나 했을 그 사람들을 싫어하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도난당한 카피’는 아니었을 것으로 이제 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회장님께서 기렸던 미래는 틀림없이 ‘옳은 미래’였을 것이 틀림없을 테니.
누구에게서 어떻게 태어났든 간에 ‘옳은’ 세상은 애초 회장님의 것이었다. 카피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