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제스처

사진문장집 [완곡한 위로]

by 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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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님 장례식에 갔을 때 나는 장발이었다. 장발에 '가다마이'를 걸치고 외할아버지 영정 앞에 엎드렸을 때 내 머리칼이 빈소 바닥에 닿았던 것이 기억난다. 큰외삼촌은 '히야~ 우리 조카 예술가구나야." 하셨다.

내 가족 중 예술가는 두 분을 기억한다. 외할아버지와 둘째 외삼촌이다.

외할아버지는 사진사였다. 셋째 넷째 두 분의 외삼촌도 사진사였다. 외가의 세 분은 모두 사진관을 운영하셨다. 아무튼 외갓집은 내 일생 지금까지도 사진관이다. 사진관을 지나 신발을 벗고 내실로 들어가면 그곳이 외갓집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사진관이 별도로 있었다. 그때는 아마 할아버지가 직접 사진을 찍으셨을 것이다. 어머니도 큰이모도 사진기를 다루지 않으시지만 막내이모는 사진기를 잘 다뤘다. 여자들은 사진기를 다루지 못하게 하셨을 것이다. 막내이모는 노동력으로 사진관에 투입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막내외삼촌이 외갓집사진관을 운영하신다.

내 어머니가 좋다 하시는 사진과 내가 맘에 들어하는 사진은 좀 다르지만 비슷하다. 얼굴과 실루엣이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나오는 사진을 어머니는 좋아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께서 사진이 많이 실린 내 책을 보시면 무어라 말씀하실까 조금 궁금하다.

사진을 찍을 때의 기쁨, 행복함. 사실은 이런 것들이 내가 찍는 사진의 주제다. 일상을 찍는 무프로젝트성 작업이지만 내 눈길이 쏠리는 것들은 모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즐거움의 제스처'였다. 그런 장면들이 자꾸만 보였다.

둘째외삼촌은 내가 서너 살 무렵일 때 돌아가셨다. 나는 이상하게 둘째 외삼촌이 기억에 남는다. 외삼촌은 심장이 고장 나셨는데 앉아서 레스폴을 연주하시던 것을 기억한다. 이상하게도 외갓집에는 둘째외삼촌을 찍은 사진은 없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외삼촌이 치던 기타들의 행방을 외할머니께 여쭈어본 적 있었다. 외삼촌을 너무도 사랑하셨던 할머니는 외삼촌의 모든 것을 태웠다고 기억하셨다.

그제 속초의 한 바다에서 서핑을 하며 놀던 젊은이 무리가 내게 아이폰을 쥐어주며 사진을 부탁했다. 화면 속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정말 즐겁구나. 너네들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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