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개척이란 건 참 힘들다.
개척지에 가면 마치 본래 내 몸에 있었던 것처럼 더듬이가 12개는 더 나오는 거 같다. 경험이 쌓일수록 척 보면 알게 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이 빵집은 밖에 내놓은 빵박스가 몇 개야? 이 치과 간호사는 몇 명이지? 이 집이 별다른 사고를 안쳤다면 수입은 얼마쯤이겠군, 하고 고객의 수입을 대략이지만 짐작할 수 있다.
영숙 언니와 함께 족발집에 가서 ‘앞다리 하나만 적립합시다’하고, 피자집에 가서는 피자 한 판, 한정식 집에선 점심 한 상 값… 그렇게 매일매일 인건비나 퇴직금 조로 적립해서 보험료를 만들게 한 게 기억난다. 지금에야 쉽게 계좌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시절엔 은행으로 모시고 가서 사업자 통장 계좌 만들어드리곤 했다. 아. 그렇게 매일 이체되어서 쌓이게 만들어둬서 매달의 보험료가 되면, 결국에는 이 사장님들의 인건비가 되고 퇴직금이 되고… 또, 홍보도 해드리는 거였다. 우리가 결제해 두고 주변분들 오셔서 드시라고 하기도 했었으니까. 돌이켜봐도 참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홍보였던 것 같다.
마감을 한 말일, 아마 겨울이었다. 우리 팀 식구들과 회식을 위해 들렸다가 400만 원이나 계약을 더 했던 날이 있었다. 마감 이후 400이라니… 기쁜 일이었다. 나중엔, 그렇게 보험에 가입하신 분들이 그 보험금이 있어서 기뻐하시는 게 더 큰 기쁨이었고. 아무튼 그 마감일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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