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움직이는

by 현진현

광화문 : 살짝 숨이 가쁘다. 오늘 오랜만에 와서 보니 그 옛날 광화문 생각이 난다. 광화문이 많이 바뀐 것도 같아서 그런가 보다.


동아일보 사옥이 광화문으로 옮겨가려던 1999년이었다. 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며칠 전 우연으로 인터넷에서 그 당선작을 찾았다. 읽어보니 음… 지금의 나와는 캐릭터가 좀 달랐다.) 2000년 초 시상식에서 비평의 대상이었던 소설가를 만나기도 했다. 나보다 키가 컸던 소설가 김 씨는 무척이나 세련되고 멋있어서 말도 걸어보질 못했다. - 내게는 후에 소설로 당선된 경향신문에 대한 기억도 있는데 보통은 ‘정동 끄트머리에 가면’ 정도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승우, 윤대녕 두 분 선생님과 함께 맥주를 마신 에피소드로 마무리된다. 그래, 자랑이다. 존경하는 선생님들이니까.)

시퍼런 한강을 처음 본 것도 그 시절이었을 것이다. 새마을호 첫 차를 타고 출발하면 늦은 아침 무렵 한강을 건넌다. 기차가 역에 가 닿으면 나는 강물처럼 걸어서 광화문으로 갔다. 그리고 광화문만 가면 교보문고에 들렀다.

서점은 그때도 지금처럼, 그래 백화점처럼 붐볐다. 하지만 그때의 서점은 여러모로 달랐다. 나는, 혹은 우리는 갈 곳이 서점 밖에 없었다. 찻집과 술집, 영화관도 있었지만 있었지만... 찻집과 술집, 영화관에는 책이 없었다. 그렇다, 그때의 서점과 지금의 서점의 가장 큰 차이는 책이 다르다는 거지.


요즘의 책들은 읽히려고 만든 책 같지가 않다. 팔리기 위해 만든 책 같다. 출판업이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소유하고 가끔씩 꺼내어 읽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재미가 사라져 가는 것도 사실이다.


교보에서 책을 ‘읽진’ 않았다. 목차를 봤다. 수십 권 책의 목차만 골똘히 읽어도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 어떤 사람이 최소한 이상의 진지함으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책이겠지. 목차가 가장 객관적으로 요약하고 있을 것이고. 요즘은 목차만 읽기에도 벅차다. 책이 많고 비슷한 책이 많아서 비슷한 목차가 많다. 비슷한 책들 - 책들이 비슷하다는 건 독자에게 치명적이다. (저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안다.)


Quiet Now

Bill Evans, 1969


아내는 나이 들어 서점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심플 라이프’에 대한 책들만 모아서 전문화하겠다고 한다.

책들은 비슷하겠지만 나름의 깊이들이 차별적이어야 할 것이다.


저 길을 건너면 교보문고다. 오늘도 붐빌 것이다. 전문화된 코너의 전문화되지 않은 복잡다단함으로 도서관적 위용을 뽐낼 것이다. 옛날에 교보문고에 진열되었던 ‘그 책’을 찾아 지방으로, 또 소규모 독립출판물이 있는 작은 서점으로 사람들은 산책 갈 것이다. 나는 오랜만의 광화문에서 교보문고를 지나쳐버릴 것이다.

이 시답잖은 이야기의 결말은 이런 것이다. 광화문은 교보문고이고, 교보문고가 내 맘에 드는 책이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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