잴 수 없는
어떤 노파가 있는데 허리가 아주 많이 꼬부라졌다.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지만 집 앞 골목과 편의점에서 본 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그저 한 번 본 거지.
아파트에서 나와 담배를 사러 가던 참이었다. (그때 내가 살던 아파트는 아주 오래된 아파트 내엔 상점이 없는 아파트였다.) 나는 편의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중간쯤 허리가 심하게 꼬부라진 노파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름 잰 발걸음으로 걸었지만 이동의 속도는 굉장히 느렸다. 기이한 광경 인지도 몰랐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 그렇게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 그러지는 않았다.
노파를 지나쳐 편의점으로 들어간 나는, 담배를 사고 나서 편의점으로 들어서는 그 노파를 다시 만났다. 노파의 목적지도 편의점이었고, 그제야 도착한 것이었다.
구부정한 허리로 천천히 계산대 앞으로 걸어온 노파는, 지폐 다발(대략 스무 장쯤으로 보였다)을 든 손을 쭉 내밀며 한 음절씩, 또는 두 음절씩 공들여 말했다.
이거 바꿔줄 수 있습니까?
노파는 천 원짜리 지폐 다발을 만 원짜리로 교환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꼬깃꼬깃, 언제부터 모은 천 원짜리였을까? 아들이 준 용돈이었을까? 아들에게 줄 용돈이었을까? 손자에게 줄 쌈짓돈이었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 폐지를 모은 걸까? 그래서 차곡차곡 모아 둔 천 원들이었을까?
허리가 꼬부라진 것 말고도 노파의 얼굴에는 그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더께가 쌓여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내려앉았을 먼지들이 그녀의 허리를 굽혀버린 것은 아닐까.
태어남, 성장, 희망, 교육, 만남, 갈등, 사랑, 연애, 결혼, 남편, 출산, 자식, 세월, 이별, 미련, 손자, 열정, 이웃, 슬픔, 행복, 미움, 죽음 혹은 죽음에 다가 섬…… 천 원짜리 한 장에 실린 무게는 얼마일까? 금액과는 상관없이 돈이 돈처럼 느껴지지 않고 금덩이보다 무거울 수 있겠다 생각했다.
아르바이트 점원은 만 원짜리 두 장을 내밀고 있었다. 자신의 업무에 충실한 점원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부터 돈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내 삶의 편린들이 떠올랐다.
McLean’s Scene (Old Folks)
Jakie McLean, 1957
언제 재래시장 좌판을 쭉 따라 들어가 볼 생각도 해본다. 내는 돈, 받는 돈, 거슬러 주는 돈, 오고 가는 돈과 식재료들, 삶이 꿈틀대는 모습이겠지. – 도시의 재래시장은 그 생동감이 덜하다. 그저 또 하나의 도시 같은 느낌이랄까.
Berlin, 2015
할머니 그 돈으로 무엇하시게요? 살갑게 한번 여쭈어봐서 돈의 무게를 가늠해 볼 것을 그랬다. 역시, 내가 계산할 수 있는 무게는 아니었을 테지만.
언젠가 이른 카피가 있었던 것 같다.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가치
무엇이든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긴 하다. 하지만 돈에도 몸과 정신의 추억이 깃든다.
당신이 쓰는 카피가 단순한 기록(record)을 넘어서 그 카피를 쓰는 당신의 기억(memory)을 담아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