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음이라는

by 현진현
2018, 가을


마가렛 글라스피의 <Emotions & Math>를 들으면서 형님이 사다주신, 티백으로 우려낸 커피를 마신다. 그러면서 KS께서 포스팅한 ‘차’의 사진을 본다. 이력서의 자격증란에 ‘Coffee Brewing’이라고 적어낸 어떤 아트디렉터의 얼굴도 떠올랐다.

KS께서 ‘커피가 생각이라면 차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Emotions & Math

Margaret Glaspy, 2016년


안양엔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고 마가렛 글라스피는 이제 <Love Like This>를 부른다. 베이스가 찻잔을 들썩인다. 해주는 외출 준비를 하고 나는 [필름스타 인 리버풀] 예매를 마쳤다. 티소믈리에 김여사에게 오늘의, 날과 어울리는 차를 한 잔 부탁했으나 거부당하고 나는 다시 글라스피의 <Somebody to Anybody>를 들으며 마시던 커피를 마저 마시려고 한다. 다음 주에 개봉한다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당신의 일상에서 ‘설마’를 없애고 ‘갑자기’를 빼고 ‘만약’을 지우고 오직, 지금에 집중하세요

새로운 풍경과 노래 가사에 가족의 웃음에 집중하세요

사소한 걱정은 악사에 맡기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당신의 지금에 Live Now - AXA


‘지금’을 중심으로 ‘가족’ ‘집중’ ‘노래 가사’ 같은 워딩이 좋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카피인지는 모르지만, 한 명 소비자로서 고객으로서 참 좋은 메시지다. (누군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답할 말이 없다. 저 카피를 쓴 사람도 대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할 즈음, Julian Lage의 <I'll be Seeng you>를 듣는다. 빰빠빰빠빠바 - 해주가 외출 준비를 마쳤고 나는 어딜 가냐고 묻는다. 우주의 마우스 클릭은 빨라지고 나는 식으면서 진해진 커피를 여전히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사진가가 아닌 여행가. 이곳에는 준비된 배경도 꾸며진 모델도 없지만 대신, 만들지 않아도 완벽한 배경과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모델들이 있다. 똑같은 여행을 하지 말고 세상을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럼, 같은 곳을 봐도 다른 것을 담게 될 테니까 여행, 가볍게 깊어지다 - 소니 RX100


기획된 카피, 긴 카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제 와선 클라이언트들이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써 보기도 한다. 누가 쓴 카피인지는 모르지만 간단하게 고쳐 쓰면 이렇게 된다.


나는 사진가, 아무런 준비를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가벼운 RX 100부터 챙긴다

아무거나 찍어도 잘 나오고 같은 걸 찍어도 다르게 나오니까

- RX100을 손에 드는 순간, 여행이 시작된다


아내가 콩나물 국밥을 먹으러 가자 한다. 아침에 모자 달린 셔츠를 벗다가 안경테가 부러졌다. 안경알부터 챙겨둔다. 그리고 콩나물의 상태를 점검하러 갈 준비를 시작한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서 좋아하는 카메라 GR2를 조끼 패딩 주머니에 넣고 괜한 헛기침을 한다. 그리고 가족의 대화나 웃음소리에 집중한다.

나는 애초에 가족이라든가 웃음소리라든가 노래 가사라는 워딩이 좋았고, 지금이라는 워딩은 더 좋았고... 커피가 생각이라면 차는 마음이다, 는 KS 말씀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누군지 모를 AXA의 그 카피라이터가 좋아지고 소니의 카피라이터를 사랑하게 되고 KS가 새삼 존경스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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