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는

by 현진현
안양, 2016


“카피에 관한 책이나 한 권 내시죠.”

가끔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어제도 누가 비슷하게 말했다. 누가 읽으면 좋을까? 만약 내가 책을 낸다면, 독자는 누구일까?

무엇보다,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란 누구인가?


식상하다 하지 말고 연필을 깎자. 연필심을 벼리면서 생각도 벼리고, 그 맑은 생각으로 사안을 담아보자.

연필로 카피를 써 보는 사람 : 무엇보다 ‘쓰는 것’이 아니라 ‘써 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천천히 쓰고 고쳐쓰기 위해 연필로 쓰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나와 당신은 기계가 아니다. 카피를 쓰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그저 당신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를 써 보면 그만이다.



카피를 위해서 카피라이터의 책을 읽진 않는다. 책 자체로서 좋으면 끝까지 읽겠지. 좋은 책에는 책을 쓴 사람의 자아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지만 김태형 선생님 쓰신 시집 타입의 책과 명확한 원칙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 오는 KS의 책을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어보았고 앞으로도 읽을 작정이다.

‘책의 화자의 자아’가 좋아서 그렇다.


카피라이터 가라사대

김태형, 1995


옛날에, 친애하는 쑥이 ‘촉, 이라는 제목이 참 좋아요’, 그렇게 책을 내 보세요, 했을 때에 나는 - 촉이라는 제목도 좋았지만 쑥이 그렇게 말해주어서 또 좋았다. 그런저런 이유로 카피가 아닌 ‘카피라이터라는 한 사람’으로서 소설이나 평문이나 시나리오가 아닌 또 다른 글(여기서 언급되는 책들이나 ‘여덟 단어’ 같은 책)을 써 볼까 기웃거려 본 적이 있다. 대단치 않은 사람도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겠지만 글(카피)을 써서 밥벌이를 하다 보니 조심스러웠다. 요즘이야 카피라이터의 긴 글이 흔하다.


[카피 4주 완성], [카피 법칙] 같은 부류는 외려 낫다. 그리고 구석구석 후배님들의 책도 좋다. 찾아서 읽어보면 카피라이터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지면 위로 떠오른다. 가장 잘 아는 것을 말하는 것, 연구해서 알게 된 것을 책으로 발표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비평가로 불러달라, 수필가로 불러달라, 하지만 내가 언제 그렇게 불러달라 말했나요? - 하는 식의 책들은 대부분 읽다 말고 덮어버렸다. 비전문적이면서 단순하게 사적인 글을 담은 책들은 접근하기 난감하다. - 요컨대 동시대에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밌다. (하긴 그래서 지금 이런 책을 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KS의 <링크>다.


링크

이근상, 2009



글을 심사하는 일은 엄청난 고역이라고, 막 저명해지려고 하다가 엎어질 것만 같은 요즘 보면 뭔가 뜸한 어떤 작가가 말했다. 왜요? 눈이 아파요? 물어봤다. 그 작가는 서너 주 전 신춘문예 소설 부문 예심을 보고 왔다고 했다. - 비문 투성이의 글부터 맞춤법 맞추기에 경직되어 이리저리 꼬인 글을 수십 편 읽고 나면 제 글을 쓸 수가 없어요.



생각을 쓰지 마세요, 생각을 말하세요


이 캐치프레이즈는 카피라이터들의 첫 수업이다. 고은태 시인이 성희롱의 대가라지만 그가 환속하는 트랜지션이 그간의 시 나부랭이를 불태우는 행위였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건 그렇고, 카피라이터들의 내리깔린 여행기와 사적 감상들은 어찌하여 댄디한 저작으로 서점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걸까.

어떤 이유로, 카피라이터는 누군가의 워너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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