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랑하는 사람은 만져야 하거든요]
서평
어디서 봤는지 기억을 찾아 헤매는데요. 찾아내질 못했어요. 그 골목이 그 골목 같고 저 사람이 그 사람 같은데 무섭지도 않고... 내가 가는 길이 낯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그런 기억으로 돌아옵니다. 실은, 조용미 시인에 대한 기억인데요. 분명히 딱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그게 어떤 자리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얼핏 기억나는 건 시인께서 저더러 대들지 말고 가만히 들으라고 조언해주는 상황... 그러니까 아마도, 아마도 강연이나 시상식 뒤풀이 같은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내가 왜 그런 곳엘 갔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요. 축하해주러 갔던가 봅니다. 기억 속의 그 자리가 맞다면 거기엔 유명 문인들이 쭉 앉아있었을 겁니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비평가도 있었고 열혈 노장 소설가도 계셨고 귀엽게 투덜대는 젊은 소설가도 있었고, 그들은 아마 심사위원들이었던가 봅니다. 그 자리가 아니라면 대낮에 황지우 선생님 퇴근길에 맥주 마시던 날이었을까요? 기억을 잘 못하는 게 거의 병적입니다. 그나저나 조용미 시인의 머리칼 뒤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서 고령 출신답게 실루엣이 담백했었어요. 황 선생님 기억도 떠올려보면 그날 그다지 즐거워 뵈진 않으셨습니다. MB 때인지 그다음인지 몹시도 괴로움을 당하던 계절이었거든요.
통제
그해 4월 16일 아이들이 수장되고 말았을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 아이들이라고 가정하자. 하지만 나는 단원고 아이의 아빠가 될 수는 없었어요. 아이들을 한참 수색하던 어느 날 누가 그러더라고요. 장가 빨리 든 초등학교 동기동창의 아이가 4월 16일 날 죽었다고. 유해가 늦게 올라왔나 봐요. 그래서 안산에 빈소를 차리지 못한다고 해요. 안산은 가득 찼던 거예요. 해서 수원에 빈소를 차린다고 전해왔었어요. 아이의 아빠, 그러니까 내 친구의 이름은 조금 익숙했는데 누구인지 역시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며칠 동안 결국 수원에 가질 못했어요. 동기들의 대표처럼 그때 수원에 왔던 동기 녀석을 나중에 만났죠. 강남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술집이었는데 그때 일은 묻질 않더군요. 저는 너무 취해 있었고 그 아이가 멋들어지게 트로트 노래를 불렀다는 건 기억이 납니다. 동기들을 대표해서 움직였던 그 아이가 위스키를 수입하는 회사의 노동조합장이었다는 것도 지금 떠오르네요.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이순신 역의 탤런트가 아군의 무덤 앞에서 칼을 딛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때 장송가처럼 흐르던 음악은 브루크너의 교향곡이었습니다. 그가 명상을 했는지 추모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밀려오는 것이 슬픔이었다면 브루크너 같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영화에서, 부주의로 아이들을 죽게 만든 아버지가 사건을 진술하는데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최근 소식에 의하면 이 곡이 알비노니의 곡이 아니라고 하더군요)가 흘러나옵니다. 구슬픈 음악이, ‘자식처럼 생각했던 부하가, 그리고 자식이 죽었습니다’를 비유해 버리니까 슬픔은 슬픔 같지도 않았을지 모릅니다. 슬픔은 감각적일까. 물리적일까. 자신이 그리 논리적인 사람인 줄 알고서 저도 제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슬픔을 통제하는 방법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였죠. 지금으로 보면 해군참모총장쯤 될 겁니다. 당대 이순신은 ‘통제(統制)’로 불렸던 기록이 몇 있습니다. 왜(倭)도 그를 ‘통제’라고 불렀다고 해요. 수 배나 되는 왜가 선단을 이끌고 몇 척 남지 않은 배를 가진 통제에게 달려듭니다. 김훈의 비유를 빌리자면 밥때마다 달려들고 매 순간 매 시각 매일 매년 평생 달려듭니다. 목을 자르고 코를 자르고 배도 가르고 귀도 잘라가는 오랑캐가 그렇게 죽어라고 달려듭니다. 그게 진짜 슬픔입니다. 슬픔은 그렇게 고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 없는 슬픔입니다. 놈들이 달려와 떠밀어냅니다. 들뜬 감각 따위로 윽박지르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져야 하거든요.
조용미 시인의 근작 '당신의 아름다움'은 이순신처럼 슬픔을 통제합니다. 네댓 번을 슬퍼 미쳐 돌아와 담담하게 읊조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개념에 그칠지라도 시라는 형식으로 통제하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저는 느낍니다. 당신은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