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벌레]
에세이(9)
처음에는 36번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36번을 타고 동아백화점 쪽 성음 레코드나 지구레코드 같은 이름의 작은 가게로 갔죠. ‘신나라레코드’나 ‘타워레코드’는 생기기도 전이었으니까. 판매원 누나가 서 있는데 뒤쪽으로 빽빽하게 레코드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내 누나와 같이 간 적도 있는데 사고 싶은 레코드가 너무 많아서 고민스럽게 서 있으면 누나가 그랬어요. “나머지는 다음에 사자. 이것 먼저 들어보고.” 아마 그날의 레코드는 ‘레인보우’의 데뷔 레코드였을 겁니다.
30년이 지나서 장소를 서울로 바꾸고, 이번에는 6호선을 타고 갔더랬죠. 중고 레코드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남대문 말고도, 새 레코드를 파는 곳이 생겼거든요. 처음 [바이닐 앤 플라스틱]에 간 날은 숨어들 듯 갔더랬습니다. 거기 근처에 제 첫 직장이 있어서 혹시나 옛 동료와 마주치지나 않을지 조심하면서 갔었죠. 제 스스로가 잘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아서 위축되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만.
거기에는 리이슈(reissue) 레코드들이 넓은 공간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레코드를 산 건 중2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재미있는 건, 레코드는 샀지만 턴테이블이 없었다는 점이에요. 전축이 없었고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습니다. 음악은 카세트로 듣고 LP 레코드는 그저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인켈’의 고급 오디오 세트를 들여놓으셨어요. 그 세트 중에 카세트 플레이어가 불량이라 다음 날 다시 기사가 와서 세팅한 것까지 기억이 나네요. 물론, 중요한 순간은 제 단독 소유의 오디오를 가지는 날이었습니다.
외갓집에 갔다가 스튜디오(외갓집은 지금도 사진관과 함께 있어요) 구석에 실버 컬러의 인켈 세트가 있는 걸 봤지요. 막내 이모가 시집갈 때 혼수로 가져갔던 걸 친정에 가져다 놓은 거였어요. 외삼촌은 그걸 버리려고 하셨대요. 저는 그걸 집으로 가져와서 책장 위에 스피커 둘을 얹었어요. 모델명이 [Pro-9]인가 그랬죠. 우퍼가 삭아 내려서 너덜너덜했어요. 전자동 턴테이블 위에 처음으로 얹었던 LP는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 앨범이었고, 그 턴테이블 위에 가장 많이 얹었던 LP는 ‘칼 뵘(Karl Böhm)’이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1번이었습니다.
아, 이 지긋지긋한 서론이 너무 길었다 싶어요.
이태원에서 첫 직장을 다닐 때 퇴근 후에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의정부 어드메 산골까지 가서 중고 턴테이블을 하나 사 옵니다. 그게 바로 미국의 [AR]사의 [XA]라는 턴테이블입니다.
AR-XA
턴테이블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은 외부로부터의 진동을 막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야 음악의 충실도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극단적인 경우가 바늘이 튀는 거겠지요? AR-XA의 70년대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인쇄광고는 레코드가 돌아가는데 망치로 XA의 옆을 치는 장면을 싣고 있었어요.
바늘이 튀지 않는다는 기초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AR-XA의 방식, 즉 플로팅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플로팅입니다. 둥둥 떠 있습니다. 스프링이 안에서 플래터를 떠받히고 있으니까요. 한데 이 플래터는 바늘(stylus)을 달고 있는 작대기처럼 생긴 암과 한 몸처럼 붙어있습니다.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지면 플래터와 암이 함께 한 몸으로 움직이죠. 그래서 진동을 완충하는 원리로 보여요. 저는 뭐 기술적인 것에 별 관심이 없는지라 20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열어보지는 않았네요.
이런 플로팅이 매력적이었던지 저는 다른 턴테이블을 동시에 소유하게 되더라도 AR-XA는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모품이 다하면 구해서 쓰고, 고장이 나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고쳐서 썼더랬죠. 왜냐고요? 이 아이는 ‘완충’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미덕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도 미덕이었고 제가 사는 삶에도 미덕이었답니다.
완충의 삶
카피라이터는 AE와 CD 사이를 완충합니다. AE와 소비자 사이를 완충하기도 해요. CD와 아트디렉터 사이도 완충하죠. 그리고 CD는 AE와 PD 사이를 완충합니다. 그리고 회사 대표와 팀원 사이를 완충하기도 하고요. 아내와 아들 사이, 아이 선생님과 아이 사이도 완충합니다. 우리 어머니와 제 아내 사이도 완충하죠. 세상과 가족 사이도 완충합니다. AR-XA가 최소 20년 최대 5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이’를 완충했을지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제 레코드 중에 무지 휘어있는 레코드가 있어요. 출렁대면서 AX-XA는 희망찬 비밥을 들려주더군요. 저는 그 ‘완충’이 아주 고매해 보였답니다. ‘행크 모블리’는 G#을 불었는데 말이죠, A가 나오면 안 되니까 XA는 죽어라고 X와 A가 함께 움직여줘요.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협동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저도 잘 써먹지만 말장난이나 라임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카피들을 볼 때면 솔직히 불쾌해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아, 저리 한 것은 타깃 소비자와 어떤 ‘경전’ 사이의 완충이겠지 싶은 생각이, 곧 들게 되어서 기분이 풀려버립니다.
디지털 음원에도 신호를 보충하면 LP 레코드 소리로 들을 수 있다고는 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제 모든 목적은 아니었던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감성’이나 ‘감각적’이란 말로 치환하기도 하던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같은 길을 끊임없이 뭔가를 보전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울 뿐입니다.
[충]자가 들어가는 단어 중에 가장 아름다운 벌레가 있어서(물론 글자는 다르지만) ‘완충 AR-XA 선생’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