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데 싫은 것 (1)
시집을 읽는다는 건 철학적인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를 듣는 것과 비슷하다.
너! 내 시 이해 못 하지? 26년 전 겨울 어느 날 한 시인이 나를 놀려댔다. 시는 이해하는 게 아니지 않아? 느끼는 거 아냐? - 인생은 늘 풋풋한 것은 아니므로,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인도 나도 20대였다.
시에 대해 시집에 대해 제대로 살피기 전,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라고 묻지 않는다. 이런 되지도 않는 물음은, 인사불성 3차쯤에 마신 글렌리벳에게 스위트함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혹은 청귤에게 사과의 달콤함을 흉내 내라고 하는 것과 같을 테지. 아무튼
편의점 위스키 대신 시집을 샀다.
시집은 보통의 책 같지가 않다. 책의 질량과 부피에 비해 값비싸다. 시를 쓴 사람의 이야기에 비하자면 흔한 말로 값으로 매길 수 없다.
시를 한 편 읽어본다.
제목 : 초록의 어두운 부분
타이틀작이다.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 나뭇잎의 뒷면은 밝아지는 걸까 앞면이 밝아지는 만큼 어두워지는 걸까 // 깊은 어둠으로 가기까지의 그 수많은 초록의 계단들에 나는 늘 매혹당했다. // 초록이 뭉쳐지고 풀어지고 서늘해지고 미지근해지고 타오르고 사그라들고 번지고 야위는, 길이 휘어지는 숲가에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 우리는 거기 앉았다 / 고도를 기다리는 / 두 사람처럼 // 긴 의자 앞으로 초록의 거대한 상영관이 펼쳐졌다 초록의 음영과 농도는 첼로의 음계처럼 높아지고 다시 낮아졌다 // 녹색의 감정에는 왜 늘 검정이 섞여 있는 걸까 // 저 연둣빛 어둑함과 으스름한 초록 사이 여름이 계속되는 동안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다 // 노랑에서 검정까지 / 초록의 굴진을 돕는 열기와 습도로 / 숲은 팽창하고 // 긴 장마로 초록의 색상표는 완벽한 서사를 갖게 되었다 // 검은 초록과 연두가 섞여 있는 숲의 감정은 우레와 폭우에 숲의 나무들이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처럼 흐릿하고 모호하다
(조용미 씀)
해설 :
[초록의 어두운 부분]이 있음을 시인은 말하고 싶다. 모든 시어가 [어두운 부분]에 대해 말한다. [어두운 부분]은 밝은 부분과 대비되는 감정인데 초록의 어쩔 수 없는 요소다. 사람 - 인생 - 감정에 대해 색채론적으로 말하고 있다. 건강과 신경성 위염을 대비시키고, 앞면과 뒷면, 나무와 숲, 연두와 어두움, 맑음과 폭우를 대비시켜 철학적인 모차르트를 들려주고 있다. 요컨대 삶이란 좋은데 싫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