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는 슬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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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소리
시간을 멈추는 소리 중에 셔터 소리가 가장 경쾌하다. 기계식 셔터든 전자식 셔터든 말이다. 이왕이면 기계식 포컬플레인셔터가 나는 좋았다.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그 시간은 정말 짧다. 짧아서 경쾌한 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느려도 60분의 1초다. 당연히 더 느린 셔터 속도도 있지만 더 느려지면 카메라가 흔들린다고 생각해서 그 이하는 취급하지 않았다. 흔들린 사진은 왠지 시간을 멈춘 게 아니라 짧은 시간을 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별로였다.
셔터막은 상하로 된 것도 있고 좌우로 된 것도 있다. 서로 힘을 합해서 시간을 멈춘다. 내가 아들 녀석에게 선물했던 니콘 FA라는 카메라의 셔터는 이른바 벌집셔터였다. 티타늄으로 만든 셔터 표면에 육각형 벌집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이 셔터는 최대 4000분의 1초의 속도니까 말 그대로 시간을 멈춘다. 4000분의 1 속도를 카메라 셔터 말고 설명하려고 하면 찾기야 찾겠지만 조금 피곤해진다. 음속의 전투기라고 해도 환산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다시 셔터 이야기로 돌아가서… 니콘 FM2라는 모델의 초기형이 이 벌집무늬셔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셔터소리 말고 시간을 멈추는 소리가 또 있나? 시간을 경계 지우는 그런 소리가 또 있을까 싶다. 혹시 숨이 넘어가는 소리일까? 죽음의 순간 역시 시간을 멈추는 찰나일 거다. 그땐 아무 소리도 없을 수 있지만 소리의 연속은 없이 어떤 경계가 명확하게 있을 것 같다. 병원에 있는 환자감시장치 모니터를 보면 계속되는 파도문양이 어느 순간 삐 하고 소리를 낸다. 죽음의 순간이다. 멈추는데 소리가 연속되는 이율배반이 있지만 어쨌든 삶과 죽음의 경계는 소리의 변화로 직시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을 사진 찍듯 할 수는 없을 테다.
실은, 시간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시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고장 난 시계조차도 시간에 올라타지 못할 뿐 시간을 멈추지는 못하고 있다. 시계뿐일까, 세상의 모든 고장 난 물건들은 마치 시간을 멈추는 것 같지만 내심 시간 속에 묻어서 쉬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시간을 멈추는 소리는 유일하다. 갑자기 고장 나버린 오디오의 무음도 아니고 갑자기 부서져버린 자동차의 파열음도 아니다. 정말 시간을 멈춘다는 기분을 선사하는 것은 오직 카메라의 셔터 소리다.
언젠가 카메라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셔터 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대체로 기계식 포컬플레인셔터의 소리를 좋아했고 특히 레인지파인더 방식의 셔터 소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고요하게 낮은 목소리로 고요를 침범하는, 서글프지만 경쾌한 아이러니. 그 소리가 시간을 멈췄다.
외갓집 사진관의 외부 진열장에는 대여섯 장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걸려있었다. 그중 한 장은 외할머니와 어머니 큰이모 작은이모, 그렇게 네 사람의 시간을 멈추고 있었다. 거기 걸린 대부분의 사진이 그렇듯 외갓집 사진관의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배경은 심도가 얕은 하늘색이다. 이 배경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는데 2000년 이후에야 막내외삼촌이 폐기하신 것 같다.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서 밝게 웃고 계시고 딸들은 선 채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할머니의 고동색 한복이 기품 있어 보였는데 그건 아마도 할머니의 기품 있는 미소 때문임이 분명하다.
그 사진이 멈춘 시간은 언제였을까? 아마 1967년이나 그 이듬해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수줍은 처녀처럼 서 있고 이모들은 아직 어린 모습이다. 어머니는 1969년에 아버지와 결혼하셨으니 시집을 가기 전이다. 나이차가 꽤 있는 큰이모는 당장 코를 훌쩍일 것 같은 표정이지만 역시 미소를 가졌다. 막내이모는 그때도 새침했던 것 같다. 그때 셔터소리는 어떤 소리였을까, 얼마 전에 들른 외갓집 스튜디오의 카메라는 마미야 RB67이라는 카메라였다. 외할머니와 딸들을 찍은 카메라는 아마도 보다 더 옛 카메라일 것이다. 막내 삼촌께 여쭤봐도 되지만 내가 추정해 보면, 대형 뷰 카메라였을 것이다.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릴리즈 된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 얼핏 떠오른다. 내가 외갓집 스튜디오에서 찍은 몇 번의 증명사진… 외할아버지가 찍으셨는지 막내삼촌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외삼촌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대형 뷰 카메라로 찍은 게 여러 번이어서 그때마다 다른 삼촌이 찍었을 수도 있다. 큰외삼촌은 분명 아니다. 나는 큰외삼촌께서 카메라를 들고 있거나 가까이한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기억은 분명하다.
어머니나 큰이모도 아니다. 내가 태어나서부터는 막내 이모가 사진관 일을 보던 것이 기억난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어머니가 시집가지 전까지 여자들은 카메라를 만지지 못하게 하셨다 한다. 그 이후 막내 이모부터 카메라를 다루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노동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쯤엔 셋째외삼촌도 결혼을 하고 따로 사진관을 차려 대구로 나갔을 것이다. 둘째외삼촌은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둘째외삼촌은 카메라 말고 늘 기타를 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기타는 깁슨 타입이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삼촌은 심장에 병이 있어서 앉아계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가 아닌 전기기타를 가까이하셨다고 한다.
대형 카메라의 벨로우즈 주름처럼 옛 기억이 늘어났다 조여졌다 한다. 역시 카메라의 매력은 시간을 멈추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찰나를 대변하는 셔터의 소리에 있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