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짧은 글
아침에 문득 두 가지 생각이 겹쳐 떠올랐다.
하나는, 앞으로 내가 긴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몇 가지 이격 된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리듬이 툭, 하고 단절된다. 이건 마치 내가 너를 위해 살 거야,라는 턱도 없는 약속을 해버린 남자의 심정이다. 그 남자는 '물론' 약속의 대상인 이 여자 말고도 처자식이 있다.
겹쳐 떠오른 또 하나는, 옛날 옛날 이사 전의 JYP 사옥이 있던 동네에서 사무실을 빌려 쓰던 시절이다.
건물은 지하로는 아마 한 개 층, 위로는 3층까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2층에 기거했다. 주차장이 몹시 좁았다. 자그마한 독일차와 내 차는 주차경쟁을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독일차의 주인과 문자메시지를 하며 서로의 주차스케줄을 공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로부터 피아노 소리가 올라와서 2층 내 업무책상 위에까지 들려왔다. "병근아! 어디서 피아노소리가 들리는데?" "건물주 딸이에요. 지하에서 학생들 가르쳐요. 교수예요." 주차스케줄을 보자면, 교수는 아니었고 강사였다.
한번 들리기 시작하니까 피아노소리는 잘 들리기 시작했다. 근래의 입시곡이 무엇인지도 잘 알게 되었다. 아, 저 학생은 S대 음대 지망생이구나. 아, 저 학생은 H대구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어림짐작했다. 유명한 교수의 취향으로 대충 상상하며 즐겼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여자,
미스터치가 많았다. 학생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여자는 베토벤의 30번 31번 32번 중 몇몇 패시지를 쳤다. 함머클라비어의 도입부도 가끔 쳤다. 전형적으로 쳤고, 자신의 유형이 없었다. 한 마디로 재능이 없었다. (나는 그 여자와 대면해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딴 식으로도 얘길 한다.)
아무튼 그 여자의 피아노 연주가 겹쳐 떠올랐다. 찔끔찔끔, 그 여자의 연주가 그랬던 탓인지... 긴 글을 쓰지 못하리라는 생각과 겹쳤다.
그렇지만 내 생에는 활기가 돈다. '잘하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 어머니께도 용돈을 드릴 수 있게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때문이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긴 글이야 짧은 글을 모으면 가능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