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사랑했던

by 현진현

미타역 근처에 서점이 있었다.

저 멀리 불쑥 도쿄타워가 보이는 걸

봐도 그렇지만

동네서점이긴 한데 그다지

동네스럽진 않았다.

2월의 셋째 날이긴 했지만 난,

2019년의 날짜가 쪽마다 표시된

새하얀 용지로 된 다이어리를 샀다.

사면서 얇은 금테 안경을 쓴 계산대의

점원에게 커버를 부탁했고,

그녀는 서점의 문양이 그려진 종이로

다이어리를 싸 주었다.

그런 까닭에 그 서점의 이름은

다이어리의 커버에 남았다.

あゆみ BOOKS.


'아유미 책방'에서, 몇 번의 방문에 걸쳐

기타 잡지를 한 권, 몇 가지 엽서,

퀸의 바이닐,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오차 잔,

그리고 다이어리를 샀다.

아유미 책방 근처의 호텔에서

열닷새 이상을 머무르면서

그래서 '아유미'라는 명칭에 대해

애착을 갖게 되었다.


일본어라면

단 한 자도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지만

일본어로 득실대는 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급기야 책을 샀다.

영일 사전과 하이쿠 모음집 말고도

몇 권의 매거진.


Signe

Eric Clapton, Unplugged(1992)


에릭 클랩튼은 인생의 힘든 시간

치료를 겸해

매니저와 함께 휴가를 보냈다.

그들은 아름다운 요트를 빌려 탔는데

그 요트의 이름이, Signe였다.

클랩튼은 그즈음 전념해서 만들기 시작한

멜로디의 제목으로 Signe를 골랐다.

기타를 치는 사람이 들으면

따라서 쳐 보고 싶은 명곡이었다.


아유미 책방을 들어가서

계산대를 지나면서 몇 걸음,

매거진 코너에 다다라

그 아래를 내려다보면

자신의 얼굴로 표지를 만든

에릭 클랩튼의 자서전이 진열되어 있다.

나는 한국어판을 읽은 적이 있는데

클랩튼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타 연습에 매진하거나

약에 취해 뒹굴거나

공연을 했다.

데뷔 무렵의 시간들은

거의 연습으로 채웠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Signe이라는 명곡을...


*

나는 실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기호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래, 이 글의 제목은 애초

'그렇지 않고서야'가 돼야 맞다.

나는 말이다.

고즈넉한 그 서점에 있는

다양한 책들의 기운을 빌어서

술 마시는 시간 외에는

끊임없이 써야만 한다.

클랩튼이 처음 산 전기기타는 넥이

심하게 휘어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왼손 운지의 또렷함은

그 시절 그 기타의 힘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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