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레코드 (2/2)

by 현진현

폐사지

브람스 레코드에서는 브람스를 제법 자주 틀어 둔다. 나는 브람스의 음악을 꽤나 좋아하고, 한동안 브람스의 첫 번째 교향곡만 듣기도 했었다.


교향곡 제1번 다단조 작품번호 68. 브람스의 첫 번째 교향곡은 곧잘 베토벤의 교향곡들과 비교된다. 브람스가 이십 년이 넘게 걸려 작곡한, 이십 대의 나를 울렸던 이 교향곡의 1악장 역시 브람스의 청년 시절에 작곡되었다. 나머지 악장을 작곡한 것은 시간이 좀 지난 후였다고 한다.

그때! 그래 그때 내가 듣던 1악장이 누구의 지휘였는지 어떤 이들의 연주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이 위대한 교향곡마저도 듣다 말게 한 또 다른 예술품을 이야기하려는 참이니까.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남을 향해 출발한 버스는 막 내리기 시작한 비를 맞고 있었다. 빗줄기는 각도가 큰 사선으로 차창에 급하게 부딪히고 있었다. 한 삼사십 분 달리자 바다 냄새가 차창을 넘어 코끝에 스쳐왔다. 아마도 저 앞에 문무왕의 산골처(散骨處)인 바다가 버티고 있던 지점이었다. 순간, 나는 무심코 버스의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그곳에 우뚝하니 거대한 쌍탑이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감은사지 탑이었다.

브람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난 브람스를 들려주던 이어폰을 팽개치고 운전을 하고 있던 기사에게 소리쳤으니까.

“아저씨, 내려요!”

소녀가 나를 따라 내렸다. 갑작스러운 정차에 놀란 승객 몇 명은 저 사람 왜 저러냐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갠 하늘 아래, 폐사지의 돌무더기 위에서 사과를 깎아먹었다. 쌍탑은 말 그대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아름다워서 사과 맛은 느낄 수도 없었다. 사과를 다 먹은 우리는 걸어서 바다로 갔다.

소녀는 그날 밤 내게 물었다.

“나, 뚱뚱하죠? 이 팔뚝 좀 보세요. 뚱뚱하죠? 그렇죠?”

나는 살며시 소녀를 안았다.

“내가 뚱뚱한 건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예요. 난 힘이 부족해서 몸무게라도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아저씨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날 밤 소녀가 해초와도 같았다는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소녀와의 추억을 기록한 유일한 사진은 그곳 바닷가에서 바위에 걸터앉은 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바닷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려 얼굴을 다 덮어버린 소녀의 얼굴은 아마도 웃고 있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민박집 창밖은 아직 시커멨다. 그런데 간유리가 진동하도록 북소리들이 울려왔다. 둥, 둥, 둥, 둥둥, 둥둥, 둥둥둥, 둥둥둥 둥, 둥둥둥 둥둥 둥둥 둥둥 ……. 북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소녀와 나는 옷을 꿰어 입고 눈을 비비며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해가 떠오르려고 했다. 아, 그리고 일제히 바다를 향해 북을 치며 제(祭)를 올리는 수많은 무당과 박수들. 기원(祈願)은 역시 예술의 시작이자 정점이었다. 어둠을 때려 부수듯 북소리가 빨라지자 불쑥 해가 떠올랐다.

소녀는 내 품에 안겼다. 그 따뜻함은 불과 몇 시간 전 밤의 어둠 속에서 내 품에 안겼던 뜨거움보다 강렬했다. 소녀와 나는 숭고해져 버린 걸까.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서 멈추지 않는 북소리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듯 긴 시간을 움직이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품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리고 소녀는 지독한 아름다움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다.



눈물

헝가리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교육자였던 티보 바르가(Tibor Varga)는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두고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는 이 곡을 연주할 자격이 없다' 고 말했다. 바르가의 차이코프스키는 과연 뛰어났다. 하지만 바르가가 왜 차이코스프스키와 눈물과 빵을 연관시켰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다만 내게도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연주할 자격이 있다.


소녀는 나를 쳐다보지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친구들은 스크램블을 먹다 잠들었고 나는 식탁에 앉아 스크램블이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빵이 젖는 순간 나는, 바르가를 떠올렸다.

아르농쿠르(N. Harnoncourt)의 소싯적 바로크 첼로가 흘렀고, 나는 빵을 내려놓고 친구들이 마시다 남긴 술을 마셨다. 그해 가을 한국의 야구대표팀은 중국에게 크게 이기고 대만에게 크게 진 끝에 일본에 크게 이겼다. 이런 심한 부침이었건만 감독의 소감은 매번 같았다. ‘야구가 다 그런 거지.’ 나는 그 감독이 좋았다. 그래서 소녀에게 말했다.

“인생이 다 그런 거지.”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온 날에 비행기는 높게 떴다. 목적지는 하노버(Hanover)였다. 소녀는 집 앞에서 가족들과 헤어졌고 나와는 공항에서 만났다. 그리고 둘이서, 단둘이서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긴 밥. 둘이서 밥을 먹으면 왠지 쑥스러웠다. 그렇지 않은 경우의 상대가 몇 있었지만 둘이서 먹는 밥은 왠지 밥스럽지가 않아서 밥을 먹은 것 같지가 않고 밥을 뱉어내면서 하늘을 쏘아보는 느낌이 들었다. 둘이서 말이다.

나는 의지와는 달리 무기력해졌다. 그래도 아침이면 허락하는 한 가지런히 머리를 매만지고 수염을 깎았다. 왠지 지금의 내 모습이 소녀의 과거 속에 정지된 잔상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또, 한도 끝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꽃잎들을 쳐다보며 긴 시간 앉아 있기도 했다. 가끔은, 하나쯤 멋진 소나타를 연주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하노버에는 유명한 음악대학이 있고, 또 그곳에는 피아노를 아주 잘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했다. 소녀가 돌연 유학을 떠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했고 전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야구감독의 말처럼 세상은 본래부터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것이었다. 그냥 나는 어렸다. 겨우 서른둘이었으니까.



툭툭

툭툭은 너의 땀이 떨어지는 소리다.

그리고 눈물이 고일 때 나는 소리다.


하노버에 갔었다. 한적한 카페에 들러 맛없는 탄산수를 사 마셨다. 자그마한 미술관을 둘러보고 시청 뒤 작은 호숫가에 앉아 딱딱한 빵도 씹어 먹었다. 하노버 국립음대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반나절 정도 하노버 시내를 기웃거리다 서둘러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하노버에서의 몇 시간은 꼭 꿈만 같았다. 꿈처럼 툭툭 끊어져서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소녀를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이틀에 걸쳐 슈트라우스(R. Strauss)의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를 반복해서 보았다. 무엇인가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독일에서의 내 의식은 툭툭 끊어져서 흐르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툭툭 끊어졌다. 그리움조차 툭툭 끊어져서 나타났다. 툭툭, 툭툭, 툭툭. 난 세상을 툭툭 끊으면서 느끼나 봐, 아니면 세상의 것들이 툭툭 끊어져서 내게 오든가.

열흘간의 독일 여행을 마치고 와서도 때때로 툭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게 문을 자주 닫았다. 웬만한 토요일은 쉬었다. 때로는 월요일까지 쉬었다.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가 생긴 셈이었다. 툭툭, 마음속에서 소리가 불거질 때마다 길을 떠났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은 정말 많았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콘서트

나는 가게에 앉아 일주일에 한두 권 꼴로 책을 읽는다. 하루는 오래전에 읽었던 이반 부닌(Ivan Bunin)의 ‘깨끗한 월요일’을 다시 읽었다. 새로운 번역으로 읽는 그 단편은 느낌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읽는 도중에 소녀의 땀 냄새를 떠올렸다. 그것이 전날 밤의 술기운 때문인지, 아침의 봄빛 때문인지 잘 몰랐다.

‘신께서 당신에게 편지하지 않을 용기를 주셨으면 해요’라는 문장은 역시 좋았다. 좋아서 두 번을 뇌까렸다. ‘가끔씩 나는 자신에게 시간에 대한 희망 외에 내게 남겨진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는 했다’도 곱씹을 만했고.

나는 하스킬의 D.960을 들으면서 깨끗한 월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또다시 읽었다. 하스킬의 패시지들은 부닌의 문장들과 부딪히기도 했고 화해하기도 했다. 하스킬의 스타인웨이(Steinway & Sons)에선 무심한 듯 깊은 소리가 났지만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내 감정에 가로막혀 주제를 상실해갔다. 주제가 상실되면 음악의 이미지와 메시지는 모두 정지되고 말았다.

불안과 초조와 무기력, 그리고 정지. 돌이켜 보면 나는 참 아름다운 계절에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소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그리고 다시 또 몇 해가 흘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녀는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보내오지 않았다. 브람스 레코드의 홈페이지에는 상품평만 몇 줄씩 쌓여갔다. 소녀가 남긴 것들은 하나씩 하나씩, 때로는 한꺼번에 사라져 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노버는 지구의 반대편으로 멀어져 갔다.


첫눈이 내린다고들 들떠 있었다. 음악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수줍은 시인 지망생 바그네리안님이 해설을 읽어 내려갔다. 해설은 훌륭했다. 논리적이면서도 시적(詩的)이었다. 하지만 회원들은 어수선했다. 나는 바그네리안님에게 귓속말로 전했다.

“좋은 해설이에요, 음…… 한 편의 시(詩) 같아요.”

바그네리안님은 약간은 실망한 낯빛으로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고 내게 속삭여 주었다.

브람스 레코드 위층에 마련된 간이 감상실에서 모처럼 열린 동호회 ‘브람스 마니아’의 정기 감상회는 그렇게 산만했다. 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첫눈보다는 덧니 소녀로 인해 들뜬 것 이상의 아련하고도 시린 맛을 느끼고 있었다.

브람스 레코드에는 온갖 클래식 콘서트의 포스터가 나붙지만 그날 저녁 여덟 시에 시작하는 소녀의 독주회 포스터는 붙어 있지 않았다. 브람스 레코드가 건물의 2층까지 세를 낼 만큼 성장했지만 나는 못내 덧니 소녀를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딱 한번 펼쳐본 포스터였음에도 나는 그날의 프로그램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메인 프로그램은 2부에 연주할 D.960이었다. 길고 긴 곡인데 소녀가 힘에 부치지나 않을까. 포스터 속의 소녀는 노년의 하스킬처럼 수척해 있었고, 웃는 얼굴이었지만 덧니는 보이지 않았다.

감상회가 끝나고 회원들이 하나 둘 맥줏집으로 몰려간 시간은 일곱 시가 막 지날 무렵이었다. 내게는 두 장의 초대권이 있었다. 브람스 레코드의 넓은 창에 포스터를 붙여주는 조건으로 받은.

나는 가게문을 닫아걸고 큰길로 걸어 나가 택시를 탔다. 길들은 차들로 가득했다. 차들은 전진하지 않는 드뷔시의 화음처럼 움직이는가 싶더니 곧바로 멈춰버리곤 했다. 나는 공연장 밖에 내걸린 포스터의 가장 큰 글자들이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서 택시를 세웠다.

콘서트홀 로비에 들어서자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공연장 출입구 옆에 소녀가 1위를 차지한 콩쿠르의 실황 음반이 프로그램 북클릿과 함께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내가 좌석에 앉자마자 2부가 시작되었다. 소녀가 무대로 걸어 나왔다. 청중들은 박수를 치며 마치 콩쿠르 경연장에서 응원을 하듯 환호성을 질러댔다. 소녀는 담백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D.960의 첫 음을 눌렀다.


한 음을 누를 때마다, 패시지 하나를 지날 때마다 그리고 그것들이 변주되고, 또 변주된 것들이 반복될 때마다 내게는 소녀와 함께했던 장면들이 한 폭 한 폭 선명해지는 그림들로 되살아났다.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의 소리는 소녀의 순박했던 덧니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1악장의 길고 긴 멜로디는 길고 길었던 시간들에 대한 해명이 아니었다. 애써 변명한들 변명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소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소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일상을 실어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녀의 연주에는 티보 바르가가 자신의 바이올린에 흘렸을 법한 눈물도 묻어 있었고, 하스킬의 지난했던 삶도 묻어 있었으며, 나와 함께 나누었던 어린 날들의 시린 달콤함도 묻어 있었다.

청중들은 모두 소녀의 연주에 빨려 들어간 듯했다. 소녀도 청중도, 그리고 나도 D.960이 더 아름답기를 기원하는 것만 같았다.


네 개의 악장이 마무리되었다. 청중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박수를 쳤다. 나도 박수를 쳤다.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소녀는 정중하게, 아주 정중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길고 긴 박수를 치다 말고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소녀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소녀는 커튼 뒤로 들어갔다 다시 무대로 걸어 나와 다시 한번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소녀는 박수가 멈추기를 기다린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청중들은 박수를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소녀는 피아노 앞에 앉기 전에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얼른 가게로 돌아가 시원한 시벨리우스나 들어야지, 아니다, 브람스 마니아 회원들이 있는 맥줏집으로 가야지.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가 콘서트홀을 완전히 나설 때까지도 들려왔다. 그리고 잠잠해졌다. 소녀가 다시 연주를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밤새 소녀가 연주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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