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렌 굴드(Glenn Gould)는 늘 자신의 스타인웨이(Steinway & Sons)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녔다. 굴드의 이 거대하고도 미묘한 콘서트용 피아노는 배와 자동차, 비행기에 실려 주인과 함께 세계의 수많은 공연장을 누볐다. 굴드의 연주여행에는 이 스타인웨이 외에도 별도로 고용된 당대 최고의 조율사가 따라다니곤 했다. 콘서트 전날 밤이 되면, 피아노의 물리적인 속성을 빠짐없이 알고 있던 굴드와 그의 조율사는 스타인웨이를 완전히 분해했다 다시 조립하기도 했다. 굴드는 음의 높낮이를 정확하게 조율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연주 방식과 연주할 작품에 맞추어 피아노의 기계적인 성격들마저 조율해버리곤 했다. 콘서트 직전에 이르면 굴드는 손가락의 마디마디까지 조율하기 위해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갔고, 손의 관절들이 충분히 유연해졌을 때를 기다려 자신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허락했다.
굴드는 데뷔한 이래 늘 과도하게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였으므로 그가 지구의 반대편까지 자신의 피아노를 대동한 채 연주여행을 다닌다거나 별도의 조율사가 연주여행에 동행한다는 사실은 그의 예민함에 대한 증거로써 널리 회자되었다. 그것이 예민함 때문인지 아니면 예술적 표현을 위한 것인지, 그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굴드는 늘 자신의 스타인웨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고, 그러는 동안 지독한 인기와도 함께 했다.
2
회사가 이전하는 날 아침에서야 그 건물을 처음 보았다. 뵈, 레, 아, 삘, 뒹 - 건물의 입구를 장식하는 대리석 아치 위에 유려하지 못한 두꺼운 명조로 큼직하게 검은색 다섯 자가 박혀 있었다. 건물이 있는 거리는 80년대에 융성한 대학가였다는데, 대학들이 하나 둘 지방으로 옮겨간 탓인지 풀 죽은 모습이 역력했다. 거리에는 다세대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교회, 유행을 좇지 못한 꾀죄죄한 맥줏집, 그네가 망가진 한적한 놀이터가 있었고 거리의 맨 끝에는 두 곳의 허름한 자동차 정비소가 나란히 붙어있었다. 그리고 밀교의 십자가로 통할 것만 같은 전봇대가 촘촘히 서 있는 것이 퍽 인상 깊었다.
거리의 역사와 함께 했다는 뵈레아빌딩은 그 거리에서만큼은 단연 돋보였다. 5층짜리 건물 치고는 두드러지게 높았고, 몇 년 전 보수되었다는 외관은 국적을 알 수 없는 어정쩡한 것이긴 했지만 나름의 고풍스러움이 미워 보이지 않았다. 그 건물은 오랜 시간이 부여한 의젓함과 두터운 층위를 가진 비밀스러움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화방이 들어선 1층만큼은 연두색 타일이 외벽을 치장하고 있어 현대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고, 무역회사가 입주해 있는 2층과 3층에는 두 개씩 테라스가 딸려있었는데 그 테라스들이 건물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결정짓고 있었다. 긴 테라스에 부조로 형상화된 장미 넝쿨은 비록 철근과 시멘트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제법 정교해서 그다지 조잡해 보이지 않았다. 4층과 맨 위층인 5층, 다른 층보다 천장이 높아 보이는 두 개 층이 회사가 이전할 곳이었다.
직원들은 이삿짐이 든 박스를 든 채 건물 입구에서부터 수군거리고 있었다. 짐을 빼곡히 실은 낡은 엘리베이터를 올려 보내고 나서야 그 수군거리던 소리가 분명해졌다. 직원 하나가 오래전 그 건물에서 ‘7인의 사무라이’를 보았다고 말하고 있었고 나이 든 축들이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술영화나 상영이 금지된 영화 따위를 상영하던 작은 극장으로 뵈레아빌딩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교적 젊은 몇몇의 기억은 달랐다. 그들의 과거 속 뵈레아빌딩은 잘 나가던 미술학원이 몰려있던 건물이었다. 학원비가 비쌌던 탓에 그 건물에 있던 학원 대신 외진 곳의 허름한 학원을 다녔다는 이야기, 또 당시 그 건물의 한 학원에서 데생을 가르치던 여대생이 얼마 전 파리에서 죽은 유명화가라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 오갔다. 시끌벅적하던 참에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왔다. 뒤늦게 도착한 김이사가 먼저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건물의 주인이 사장의 새로운 아내라고, 알고들 있으라는 듯 뇌까렸다. 갑자기 좁은 엘리베이터 내부에 여자의 향수 냄새 같은 것이 나는 것도 같았다.
내가 보기엔 그 건물이 애초 극장이나 미술학원을 위해서 지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바닥의 패턴부터, 조명의 위치, 계단의 각도 같은 것들을 비롯해서 건물의 많은 부분들이 흔히 보는 익숙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 건물은 뭐랄까, 어떤 사람의 개인 저택 같은 인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건물이 처음 들어서던 때의 용도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척이나 느린 엘리베이터는 4층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4층은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천장이 훨씬 더 높았을 뿐 아니라 넓이 또한 짐작을 웃돌았다. 4층에서 5층으로 가는 계단은 안과 바깥 두 군데에 있었다. 내부의 계단에는 온갖 박스들이 뒹굴고 있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도 그 통로는 늘 그렇게 지저분했다. 5층으로 가는 바깥 계단 역시 특이하게 널찍해서 나는 그 계단의 난간에서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곤 했다.
3
회사는 내게 두 번째 직장이었다. 지방의 2년제 대학에서 그래픽 작업에 소용되는 컴퓨터 기술을 배웠고, 졸업 후엔 프리랜서로 일하는 선배 밑에서 꼬박 2년 동안 일을 거들며 푼돈을 받았다. 그러다 제대로 취업을 한 곳이 그 회사였다. 광고회사인지라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오전 열한 시는 넘어야 대부분이 출근했고, 대신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퇴근들을 했다. 하긴 선배와 일을 할 때도 딱히 출퇴근 시간이란 게 없긴 했었다. 어쨌건 알량한 자유로움은 기꺼이 누릴 수 있었지만 조직에서의 일상이 주는 중압감이 나를 무척이나 피곤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회사의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광고주로부터 직접 발주를 받아 스스로 광고를 만드는 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대형 광고대행사로부터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도급받아 말 그대로 ‘그림’만을 만드는 일이었다. 회사의 주된 일은 후자였다. 나는 그저 그림을 발주한 광고대행사 소속 아트디렉터의 지시를 받고 충실하게 이행하면 그만이었다. 때로는 파일로 전달된 광고 카피들을 그림 위에다 배치하는 것까지가 나의 일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옮겨내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작업을 하다 말고 나는 문득문득, 징그럽게 생긴 약을 어쩔 수 없이 삼키고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때로 위로가 되는 건 이미지들을 변형하고 조작하면서 느끼는, 창조자의 조수가 된 것만 같은 쾌감이었다. 유명한 여자배우의 얼굴을 성형하고 세계적인 가수의 키를 키우는 사이 그럭저럭 5년이 지났고, 회사가 규모를 넓혀 이전하는 대열에 나도 끼게 된 것이었다.
카피가 인쇄된 서너 장의 종이, 하얀 키들과 투명한 틀로 만들어진 키보드 … . 타이핑을 시작하자마자 카피들은 모두 거짓말이 된다. 카피를 고친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고쳐낼 뿐, 연주자가 악보를 확인하듯 카피의 문장부호에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자음, 모음, 대문자, 소문자,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키를 누른다. 쉬프트 키를 누르고 기호를 친다. 마침내 종이에 인쇄된 문자들을 한 자도 빠짐없이 모니터 속으로 옮겨 넣는다. 다시 타이핑 ……. 그러다 나는 그만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클라이맥스에 타건(打鍵)을 하듯 스페이스 바를 깊이 누른다. 상체가 리듬을 타고 멜로디의 흐름에 반응한다. 수십 개의 모니터와 수십 개의 컴퓨터들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역겨워진다. 창을 열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저 창을 쳐다볼 뿐이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면 모니터는 푸른 바다를 펼쳐 보인다. 나는 정말 피아노를 연주한 셈이 된다.
5층에는 사장의 방만 있었다. 회의실 하나 정도 있을 법했지만 널찍한 사장의 방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5층에는 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장은 회사에 머무는 날이 드물었다. 회사가 이전한 후 사장은 출근하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소문대로라면 한 보수정당의 아랫자락을 기웃거리는가 보았다. 대부분의 일처리는 사장의 오랜 친구인 김이사가 맡고 있었고 그런 까닭에 김이사만이 사장을 만나기 위해 종종 5층을 드나들었다. 다른 직원들이 5층을 드나들 일은 거의 없었다. 나 또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드나들던 바깥 계단에서 5층의 내부를 가끔 쳐다볼 뿐이었다.
5층에 사장의 방 말고도 방 하나가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회사가 이전한 지 한 달은 지나서였을 것이다. 그때는 그곳을 그저 잡다한 물건들을 넣어두는 창고쯤으로 생각했다. 문 때문이었다. 얼핏 보아도 건물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문이었다. 그 문은 내부가 창고라 하더라도 참 보잘것이 없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조그만 여닫이문이었다. 빛바랜 페인트가 너덜너덜하고 장석은 전체가 녹이 슬어 버려진 쪽문처럼 못나 보였다. 내가 그 문을 열어볼 이유는 없었다.
그 문을 열어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초저녁이면 언덕 아래에서 훈풍이 불어오곤 했으니 이전한 지 서너 달 정도가 지난 초여름이었다. 체온이 느껴지는 그런 바람은 마음 깊은 곳까지 설레게 만들기 마련이어서 일거리가 잔뜩 쌓여있었지만 기분만은 썩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주 늦은 밤 나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그 바람을 느끼기 위해 5층까지 올라가 있었고, 그날따라 문득 그 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내 관심이란, ‘저 쪽문은 뭐지?’, ‘저 창고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하는 정도였다. 굳게 잠겨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 문은 놀랍게도, 손잡이를 당기자마자 열려 버렸다.
4
그곳은 누군가를 위한 연습실인지도 몰랐다. 퍼뜩 그런 생각이 스쳤다.
피아노는 광목으로 덮여있었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긴 했지만 광목의 실루엣은 인상적이었고 나는 그것이 틀림없는 콘서트용 그랜드피아노임을 기억해냈다. 피아노는 동쪽의 창을 등지고 있었는데 피아노와 창 사이에는 낡은 나무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거리의 가로등이 눅눅한 오렌지 빛으로 하얀 광목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천을 벗겨냈다. 그것은 스타인웨이였다.
검게 빛났다. 자욱하게 먼지가 날렸지만 나는 그것이 스스럼없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와 마주친 느낌이 들었다.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떨고 있었을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피아노가 빛나는 바람에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나는 그만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 어림잡을 수 없었다. 껌벅대던 가로등이 꺼져버렸고, 가로등 뒤로 낡은 네온사인들이 색 바랜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왠지 을씨년스러워 라이터를 켠 채 방을 둘러보았다. 라이터를 껐다 켜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사이 사물들이 서서히 제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는 전구를 떼어낸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 흔적 옆으로 전선 같은 것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곳은 제법 넓은 곳이었다. 콘서트용 피아노 한 대가 있고도 텅 빈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북쪽 벽에는 10호 크기의 유화 한 점이 액자도 없이 캔버스 그대로 걸려 있었다. 그림은 온통 흰색 물감으로 덮여 있었다. 추상화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땐 함박눈이 내린 작은 마을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눈에 덮여있고 오직 근경의 굴뚝 하나가 치솟아 있었다. 그 굴뚝이 작은 마을을 이국적인 느낌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동쪽의 창은 그 방의 유일한 창이었다. 오래된 교회에나 있을 법한 모양새를 지닌 쇠로 만든 아주 작은 창이었다. 그 창의 창틀 역시 그 방의 문에 달린 장석처럼 심하게 녹이 슬어 손이 닿기만 해도 시큼한 느낌이 들었다. 얇긴 했지만 유리는 멀쩡했다. 손잡이를 젖혀서 밀어 올렸더니 훈훈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틀에서 벗겨진 페인트 조각이 툭 툭 떨어졌다. 창밖 아래로 쓰레기 더미가 쌓인 좁은 골목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창문을 고정시킨 후 가만히 선 채 피아노를 쳐다보았다. 피아노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대해 곱씹어보려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피아노는, 다만 아름다웠다. 나는 피아노로 다가가 건반 덮개를 열어 보려 했다. 하지만 손을 대는 순간, 그 경외감이란 ……. 무언가 내 머리부터, 어깨를, 팔을, 손목을, 손가락의 끝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감정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 방을 나오고 말았다.
이튿날 이른 아침, 그 방에는 작은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피아노의 번쩍이는 검은 빛에 휘둘려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찬찬히 피아노를 살펴보았다. 피아노는 꽤 오랫동안 방치된 듯했다. 곰팡이 같은 것들이 피아노의 다리며 발에 쓸어있었다. 하지만 50년대에 생산된 피아노 치고는 번듯한 편이었다. 피아노의 명판에는 모델명이 선명했다. CD318이었다. 문득 굴드의 피아노가 떠올랐다. 하지만 굴드의 318은 -제작 번호가 174번이었던 그 318은- 1957년, 연주회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트럭에서 떨어져 망가져버렸다는 사실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준비해 간 수건으로 피아노의 건반 덮개를 닦았다. 그리고 살며시 덮개를 들어 올렸다. 여든여덟 개의 건반이 눈앞에 펼쳐졌다. 건반은 티 없이 깨끗했다. 조심스럽게 건반 하나를 오른쪽 엄지로 눌러보았다. C음이 높은 천장을 돌아 넓은 방을 휘감았다.
내친김에 나는 나무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삐걱대고 있었다. 나는 평균율(The Well-tempered Clavier)의 유명한 프렐류드를 치기 시작했다. 음계가 삐걱대고 있었다. 엉망이었다. 피아노는 조율이 안 되어 있었고, 내 손가락들은 너무나 굳어버려서 음에 맞는 건반을 누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손의 기억을 빌어, 막 배우기 시작한 걸음마처럼 한 음씩 내디뎌 평균율의 제1곡을 푸가(Fuga)까지 연주하고 말았다. 아름다운 소리였지만 스타인웨이답지 않은 무거운 음색이었다. 나는 다시 스카를라티의 짧은 소나타를 연주해보았다. 스타인웨이는 조금씩 무거움을 덜어 내며 빛나는 소리로 바뀌어갔다. 아침 해가 구름에 가린 것인지 온 방안이 석양처럼 붉어졌다. 보면대에 비친 태양이 눈에 부실 듯 말 듯 시야를 괴롭히는 바람에 나는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그제야 그 스타인웨이의 건반이 마치 굴드의 318처럼 아주 가볍게 세팅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굴드처럼 어깨를 구부리고 팔은 들어 올린 채 건반을 두드려 보았다. 황홀했다. 손가락 끝이 닿자마자 건반은 가볍게 해머를 움직였고 해머는 현을 내려쳤다. 연주를 할수록 피아노의 기계적인 부분들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페달도 문제없었다. 현 하나가 끊어져 있었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그 방은 왠지 슈만과 잘 어울릴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다시 바흐를 연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