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도의 브루크너
Bruckner : Symphony #9
Claudio Abbado, 2014년
북부 롬바르디아인 줄리니가 그랬듯 밀라노의 클라우디오 아바도 또한 일종의 독일 오스트리아의 정신을 구현해냈다. 그의 베토벤과 브람스가 그러하고 말러와 브루크너 또한 그러하다. 이탈리아 지휘자들이 오페라를 내려놓고 콘서트 포디엄에만 서게 되면 레퍼토리의 절반이 독일 오스트리아의 음악이 된다. 그럼에도 음악이란 세계는 매우 흥미로와서 이탈리아 지휘자만 보더라도 토스카니니, 줄리니, 무티, 아바도, 샤이, 가티의 베토벤, 브람스, 말러, 브루크너가 전 세계 애호가들을 납득시키고 몇몇은 최선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바도의 마지막 레코딩은 브루크너의 9번이다. 9번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중 가장 선호되고 또 그럴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과거 줄리니는 예의 그 큰 스케일로 음향의 성찬을 맛 보여 주었고 첼리비다케는 역시 느림의 미학을 선보였다. 또 반트가 내보인 음향의 순수함과 우직함은 禪僧의 도량과도 같은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다.
언젠가 퇴근길에 아바도의 마지막 레코딩을 들었다. 1악장이 혼란해지기도 전에 40대 한 남자가 비 내리는 도로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바도의 약음들은 세상 그 어떤 약음보다 작은 소리였고 강음들에는 마냥 약진하지 않는 달콤함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약음과 강음의 사이에는 마치 일흔여덟 단계의 강약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목관은 나무소리를 내고 금관은 빛났다. 스트링들은 무리를 이루어 군무를 추어댔다.
앙상블이 정교해지면 음향은 투명해지는구나.
이것은 '음악의 음악'이지 오스트리아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2013년 8월 21일부터 26일간의 연주. 루체른에서의 일곱 날(이레). CD의 재킷에는 THE FINAL RECORDING이라 인쇄되어 있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생애 마지막 콘서트였다. 물론 마지막일지는 아무도 몰랐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