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카피 다시 쓰기 No. 22

by 현진현

듣거나 따라서 소리 내 읽기만 해도 힐링이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지만 어떤 현실은 이 카피처럼 녹록하진 않은 모양이다. 열심히 일을 했다 한들 판단할 기준은 찾기 어렵고, 무엇보다 눈치를 보느라 떠나기가 쉽지 않다.


미리 휴가를 내고 가급적 부킹부터 해버리라고, 늦겨울 초봄부터 나는 팀원들에게 얘기를 한다. 그리고 나는 몸에 밴 눈치로 눈알을 굴리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크기의 휴가를 선언한다. 어쨌거나

이제는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막 광고회사에 입사했을 무렵, 사내에서 교육을 받고 6층의 현업으로 막 내려온 그때-나의 첫 부서는 명칭도 아름다워 '프리랜서 그룹'-주변의 한 자리는 몇 주 동안 '나 휴가요,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나풀대는 A4가 파티션에 붙어있었다. 거의 보름을 훌쩍 지나서야 자리의 주인이 휴가로부터 복귀했다. 전미 일주를 끝내고 돌아온 인봉 선배였다. 뭐, 선지자라고나 할까? 그때만 해도 2주를 휴가로 붙여쓰는 건 휴가문화의 일대 혁신?

다시 어쨌거나

저 광고 카피는 우리 삶의 중심이 '일과 직장'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야 만다. 수구정당 같은 곳에서 '나라'를 폄훼하다 보니 일자리 밖에서 우리의 삶을 보전해주는 복지의 역할이 하찮은 것으로 밀려나 버리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중심은 서서히 이동해왔다. - 당연히, 직장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직장을 버리라거나 하는 언설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리라 믿고.


열심히 휴식한 당신, 일하라


열심히 일했다면 떠나는 시대로부터 열심히 떠났다면 돌아와 일도 하는 시대로의 전환이다. 시대가 전환되었다고 다수가 납득할 시점이 아니긴 하지만 전환은 이미 저기 산등성이에서 도사리고 있다.


일하듯 떠나고,
떠나듯 일하라


과도기적으로, 직장에서 주어지는 정기 휴가는 업무와 동급이다. 휴식과 업무가 같은 위상이라는 말이다. 일을 위해 휴식이 필요하다는 경험적 주장이 솔솔 하게 나오고 있고,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직장에서 상사의 휴가를 상신하기 위해 눈치를 본다는 어떤 문화는 헐거운 신화처럼 바람결에 날아가버릴 것이고. 뭐, 이 즈음의 세대들은 그런 꼰대적 발상을 기피하며 태어나지 않았던가.


P.S.

만으로 스무 해를 넘게 같은 일을 해오고 있지만, 이제야말로 내 업무를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 또한,

늘 떠다니거나 떠돌아다니며 휴식해 왔지만 그 휴식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

내 앞의 대상을 우습게 여기면 나도 우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 니들은 정말 하나도 우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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