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서, 다시 쓰기

카피 다시 쓰기

by 현진현

저는 시니어 카피라이터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라는 굉장한 직책도 가진 적이 있습니다만 글쎄요, 우선 카피를 쓰는 것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CD로서는 대체로 힘들었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하여튼 저는 여전히 카피를 쓰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광고회사에 신입 입문했을 때나 지금까지도 카피를 쓰면서 선배들이나 주위 동료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써라


였습니다. '백 개쯤 써 봐'하고 덧붙이는 선배가 계셨고, 시니어인 지금에는 이렇게 말고 다시 써보면 어떨까 하고 권유하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작은 다시 쓰기'쯤 될까요?

광고 카피를 다시 쓰는 것은, 단순한 워싱-글을 다듬는 거죠-이 아닌 다음에야 타깃과 방향이며 브랜드를 새롭게 설정하기도 하는 사실상, 카피를 처음 쓰는 것과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 어투를 바꾸거나 조사와 어미를 바꾸는 것으로 브랜드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흔하지는 않은 일입니다. 간단히 말해 카피를 다시 쓴다는 것은, 카피가 소용되는 환경을 다시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즉 '큰 다시 쓰기'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문득, 세상이 카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이 책을 써 보겠다는 다짐이 되었습니다. 카피의 본래 의미라고 할 수 있는 광고 카피, 책의 제목, 언론의 보도, 영화의 제목, 철학적 진술들, 학술적 명제들, 노랫말, 연극의 대사, 표지판의 경고문들, 문구의 이름들, 술의 이름들, 레코드 음반의 타이틀, 밴드의 이름, 사람을 부르는 호칭,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들... 이 모든 카피들은 시대가 달라지면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또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써져야 할지도 모르죠. 카피를 보고 읽는 사람들이야 그대로 일지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한번 틀어서 다시 써 놓고 보면 카피의 외피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도 있을 거라고 봐요.


좋은 카피가, 또 자주 접하는 카피가 제 눈을 사로잡으면 저는 그 카피를 느긋하게 소리 내어 읽어볼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제가 살아 숨 쉬는 여기에 앉아서 카피들을 다시 써 볼 것입니다.


다시 쓰는 'writing'은 카피라이터로서, 다시 쓰기 위한 'thinking'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친구로서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해 보려고 합니다. 일단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메모를 할 겁니다. 그래서 좋은 목차를 만들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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