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 씨가 즐겨 마시던

진현 씨가 하루 종일 즐겨 쓰던 다이소 삼색 볼펜

by 현진현

요 며칠 열병에 시달리듯 밤낮 가릴 것 없이 막걸리를 연거푸 마시다 정신을 차려보니 서너 개의 업무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여하튼!

익지 않은 막걸리는 그만 마시기로 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 막걸리가 붐인가 보다. 장사가 안돼야 익은 막걸리를 시장에 내어 놓는데... '박통이 마시던 술'이라던, '청담 순댓국' 같은 고급(?) 순댓국집에서나 팔던 이 막걸리가 보편화되면서 이른바 퀄리티 관리가 안 되는 것 같다. 생산량이 많아져서 그런가 보다 한다. 내 입맛에는 덕산 막걸리가 좋은데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가 없다.

박정희가 마시던 술은 또 있었다. 저 유명한 '시바스 리갈'이다. 박정희 덕분에 일부러 이 술을 피해 온 지난 시절이 조금 아쉽다. 박정희가 6년 산을 마셨는지 12년 산을 마셨는지는 잘 모르지만 최근 들어, 마셔본 이 위스키는 6년 12년 모두 좋았다. 적절한 스위트함이 이상적인 스카치였다.


땡땡 씨가 즐겨 마시던


아주 간단한 걸 쓰더라도 난 우선 손으로 수기를 하는 편인데 보통은, 50퍼센트 할인을 하길래 질이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사 둔 몰스킨에다 쓴다. 이 몰스킨이 예전에 그랬다. '피카소가 쓰던 수첩'이라고. 나중에 또, 어떤 연필이 들어오면서는 '헤밍웨이가 쓰던 연필'이라고 했다. 불안했던지 헤밍웨이에 피카소도 덧붙이고 다른 작가도 투입시켰던 것 같다. 볼펜에도 그런 '뼈대'스러운 브랜드가 있겠지마는, 나는 지금 이 메모를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삼색 볼펜으로 쓰고 있다. - 국산인데 품질이 상당히 좋다. 내 사정이야 어떻든, 문득 '땡땡 씨가 쓰던'이라는 이 카피는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피카소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헤밍웨이를 유난히 미워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 이런 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박통이 마시던' 때문에 나는 긴 시간에 걸쳐, 술집에서 누군가 '시바스 어때?', '지평생 마실까?' 하고 권해오면 '조까!'하고 단칼에 거절해 왔다. 그러다 맛있겠거니, 그러니 유명인이든 독재자든 인류의 화가든 마셨겠지 하고 마셔보게 되었다. - 어제는 사실 늘 마시던 장수 막걸리가 없기도 했고 3천 원이라고 되어있길래... 계산할 때 보니까 4천 원.

피카소가 언제 어디서 쓰던 몰스킨 인지도 궁금하고, 헤밍웨이가 왜 그 연필을 쓴 것인지도 궁금해지는 새벽이다. - 미야자키 하야오는 브랜드가 아니라 6B를 쓴다고 알려져 있다.


진현 씨가 하루 종일 즐겨 쓰던 다이소 삼색 볼펜


알고 보면, 그건 헤밍웨이의 소유였고 피카소의 소유였고 멜빌의 소유였다. 조니워커가 하루키의 소유인 것처럼 말이다. 내 소유? 나라서 별 의미는 없지만 난 대구에서 파는 불로 막걸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