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르그스키의 명곡이 무그 오르간 소리로 흘러나오면, 묘하게 다른 세상으로 넘나드는 것 같았다. 어린 마음이라 그랬을까, 러시아도 아니고 서쪽 유럽도 아닌 데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이 아닌 어떤 세상으로 가는 것 같았다.
담뱃갑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 은색 위에 비닐 코팅, 그 안에 작은 앨범 재킷, 종이 상자 속에는 플라스틱이 있고 그 플라스틱을 열면 까만 플라스틱 위에 연두색 속지가 붙어있다. 나는 그렇게 생긴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카세트테이프로 '에머슨 레이크 파머(Emerson, Lake, Palmer)'를 듣기 시작했다. 록 장르를 통하긴 했지만 나름 본격적인 클래식 스코어를 듣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그 중학생 시절엔 클래식이어서가 아니라 록 음악이어서 들었고, 대학교에 가서 차이코프스키에 빠져 들었다. 5번 교향곡은 특히 네 개의 악장을 모두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들었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므라빈스키의 연주는 지금 들어도 쌀쌀하니 좋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바그너를 더 잘 듣기 위해서 오디오 시스템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
내 귀에는 '에어팟'이라는 것이 꽂혀있었다. 찬란했던 오디오들은 세파에 흐지부지 턴테이블 정도를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얀 콩나물 대가리가'로버트 크레이'Robert Cray' 같은 블루스를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훌쩍 큰 아들이 아이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에어팟을 쓰고 싶어 했다. 콩나물 대가리에 별 애착이 없던 나는 내가 쓰던 것을 아들에게 주고 휴대폰도 아마존에 주문해 구글의 픽셀폰으로 바꿔버렸다. 그리고는 레코드 가게에서 추천받은 젠하이저를 사 와서 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아들 녀석이 그 에어팟을 분실했단다. 몸에 지니고 다니며 사용하던 것을 잊어버렸으니 난감하고 섭섭할까 싶어 나는 신형인 '에어팟 프로'를 알아보았다. 한데 아이 엄마가 반대했다. 돈이 없다나? 언제는 있었던가 싶지만, 아내의 말대로 낭비 같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에어팟 프로 사용기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유가 내 앞에서 노래를 한다"
세상에나 나는 이 헤드라인을 읽은 지 채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에어팟 프로를 사서 귀에 꽂고 말았다. 아이유가 가수인 줄만 알지 그이의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던 내가, 광고 카피를 20년 동안 써온 내가, 저 카피에 감동해 애플의 허접한 AS를 구매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아이유가 사용기를 쓴 사람 앞에서 어떤 노래를 들려주었는지도 모르고 그 노래가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노이즈 캔슬링(Noise-Canceling)'이라는 기술의 에 '아이유'라는 고유명사가 더해진 순간, 메시지의 매력도는 배가되었다. 쓰고 있던 젠하이저도 아이유의 단독 공연이 가능한데 말이다. 젠하이저에 대한 바이럴들은 음악성을 강조하고, 애플에 대한 사용기는 '단 둘이'를 강조했다.
"이지은과 단 둘이..."
이런 식의 카피가 읽히고, 아이유 대신 지름신과 단 둘이 있게 된다. 지름신이 말한다.
"어쩜 세상에 그런 게 있어? 얼마래?"
구체적이고 고유명사적인, 그러니까 사적인 워딩은 침투력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