觸: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영화, 기생충

by 현진현


나는 이 영화가 왜 싫을까? 만든 감독의 파마머리를 따라 해 보고 싶은 생각까지 있는데도 이 영화나 '설국열차'는 '좋지 않다'에서 점점 '싫다'가 되어간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설국열차' 만큼 설명적이고 교조적이진 않다. 그저 이 영화의 외연이 싫은 건가? 온갖 상을 받고 칭송을 받는 그 외연의 콘트라스트로 보면 작품은 그저 그렇기 때문에? '설국열차'를 고속버스터미널이 한 극장에서 보는데 아, 저건 대체 뭘까 계'급'을 설명하는데 상위의 어떤 열차 칸에서 골드베르크의 아리아가 흐르는 것... 그것도 블랙코미디였을까? '구토유발자들'이란 영화가 실제 구토를 유발하는 것과도 같은 유치한 직유가 영화 속에 녹아있었다.

곰곰 생각하던 나는 이 영화가 수학적이어서 매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어떤 출판사 편집자가 써낸 한글 맞춤법 책을 사서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맞춤법을 설명하는 내용보다 예시를 든 문장들이 더 재미있었다. 문장들은 감각적이어서 문학적이었다. 가령, "괜찮으니 안주나 더 시켜. 남은 거라곤 깍두기뿐이네."라든가 "넌 어째 만나기만 하면 우는소리냐?" 같은 예시는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것이었고 "이놈이 치사하게시리"와 "이놈이 치사하게끔"의 비교는 텍스트의 미묘한 문학적 성질을 건드렸다. 이 영화가 맞춤법을 잘 맞춘 정도라고? 맞춤법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의 감각이라고? 나는 뭐 그 정도로 본다.

사실 영화는 몇 장면을 제외하면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현실'인데, 이 현실 자체를 알레고리로 보는 '해석적 관점'이 못마땅하다. 영화는 '도표적'이다. 영화가 도표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긴 하지만 도표적이다. 도표적이어서 내 취향에는 두 번 보기 힘들다 정도로 요약하고 싶은 거다. 도표 속에서는 어떤 '시적 과장됨'이 있는데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도 그런 것에 있었다. 어떤 까닭인지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가로 개봉이 되었는데 아들 녀석이 친구들과 보러 갈 예정이라고 해서 정말 봐도 좋을까 하고 내가 먼저 가서 보았다. 아이들이 봐서 문제 될 장면은 없었고 아이들과 같이 봐서 문제 될 장면은 있긴 했다. 어쨌든 그 '과장됨'이 도표로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이 나는 불유쾌했던 건지도... 놀라운 점은 그 도표 끝의 총액에 우리 모두를 그려 넣었다는 점인데 "우리 모두 이렇게 살고 있지 않아?"라는 귀결이 '영화의 재미'를 상쇄시켜 버린다.

영화광 지젝(Slavoj Žižek)은 이 영화에 대해, '부자를 악으로, 빈자를 선으로 설정하지 않았던 점이 좋았다'라고 주워 삼켰다. 부자를 악으로 빈자를 선으로 설정한 좋은 영화가 있기나 했나? 저런 반동이 또 하나의 도표가 되어버리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념 없음을 강변하는 새로운 이념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계층이나 계급이 연극적으로 갈리지는 않는데 영화라고 해서 연극적 부담을 짊어지지 말란 법은 또 없다. 대체 나는 왜 이 영화가 싫어지는 걸까? '설국열차'의 그 건조함을 벗어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세부적으로부터 더 건조하다. 이 오류 없는 맞춤법은 따분한 문학 선생님이다. 영화는, 결과적으로 영화라는 이유로 PC(Political Correctness)를 교묘히 피해 간다. 이 영화의 가장 영화스러운 미덕이랄 수 있겠다. 영화는 너무나도 많은 칸을 가진 도표다. '마더'가 단 하나의 스크린에 펼친 거대한 하나의 심장이었던 것에 비하자면 너무나도 많은.

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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