觸: 기나긴 경쟁

레이먼드 챈들러, 기나긴 이별

by 현진현


'컴투게더'라는 작은 회사에서 넘버 2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야근을 핑계로 가끔씩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나는 밤새 술을 마신다거나 실제로 사무실에 홀로 남아 일을 하기도 했다. 일을 하는 밤 내내 일을 했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술을 마시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1층으로 옮긴 내 공간(물론 팀원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긴 하지만 진짜 방처럼 구분되어 있었다.)에 들어가서 후드 모자를 덮어쓰고 일을 했다. 그런 날은 아침 출근이 늦을 수가 없었다. 술을 마셔도 습관처럼 사무실로 기어 들어와서 고꾸라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떤 날, 무경이가 출근 시간을 30분이나 넘어서 방으로 들어왔다. 안색이 창백했다. 출근 시간을 강요하지 않지만 출근 시간을 맞추려고 하는 그 아이가 왜 늦었으려나 생각해보려는데 본인이 먼저 말을 건다. "팀장님, 출근길에 휴대폰을 잊어버렸어요. 그걸 찾아보느라 늦었습니다." "전화는 해봤어?" "예,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네요."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에 김무경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그가 다시 내 팀으로 와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인데 그는 고향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바다 건너 고향까지 왜 갔는지는 물어보질 못했다. 왠지 당장에라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통화하는 동안 나는 실제로는 만나보지 못한 무경의 머리칼이 긴 아내가 제주의 바람에 날리겠구나, 또 그들 사이에 태어난 어린아이가 얼마나 귀여울까 같은 생각도 아닌 이미지도 아닌 그런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무경은 디자이너라 그런지 아주 감각적이었다. 유행에도 민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무경은 차분하지는 못했다.

무경의 아이폰4(5일 수도 있다.)는 내가 찾아줬다. 아마 무경은 그날부터 속으로 나를 명탐정이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물었다. "전화기를 잊어버리기 전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과 잊어버린 것을 알게 된 순간을 설명해보렴." "버스 타기 전에는 있었어요. 한데 버스를 타고나서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탔던 정류장으로 돌아가서 주변을 샅샅이 뒤졌어요. 인도에도 도로에도 없었어요." "잘 생각해봐, 정류장에서 버스를 올라탈 때 뭔가 떨어지는 소리는 듣지 못했어?" "모르겠어요,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류장에는 출근시간이라 사람들이 꽤 있었겠군. 그렇지?" 나는 방에 비치해 둔 오디오의 FM을 켰다. 때마침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흘러나왔다. '때마침'이라는 건 그 아리아를 듣는 순간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경에게 A4 한 장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당시 회사의 사장이시던 한 사장님처럼 재떨이에 연필을 깎았다. 연필을 나름 늘씬하게 깎은 다음, "앉아라 무경."이라고 무경을 불렀다. 무경은 내 자리 옆의 소파에 앉고 나도 자리를 옮겨 앉았다. 나는 A4에다 그릴 필요도 없는 그림을 그렸다. "무경아, 잘 봐봐. 여기 인도와 도로 사이에 틀림없이 하수구 같은 게 있을 거야. 이 하수구를 열고 버스 진행방향 반대편으로 깊숙이 손을 넣어봐. 거기에 네 휴대폰이 있을 거야." 무경이 100원짜리 동전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오늘 급한 업무도 없으니까 비오기 전에 얼른 가보는 게 좋을 거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무경이 돌아왔다. 눈빛으로 "팀장님은 명탐정~"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게 느껴졌다. 하수구가 있었던 것부터 신기했다고 무경이 말했다. 그리고 하수구를 덮고 있는 구멍 뚫린 무쇠 덩어리가 너무 무거워서, 게다가 도로에 속해 있어서 그는 구청의 담당자를 불렀다고 했다. 무경의 보챔에 도구를 가지고 나타낸 구청의 직원은 가볍게 교통을 통제하고 곧바로 하수구 덮개를 들어냈다. 무경은 버스 방향의 반대편에 굵은 팔뚝을 밀어 넣었다. 손이 바닥을 긁자마자 전화기는 주인의 온기를 느꼈는지 진동을 하면서 반겼다.


내가 무경과 지냈던 그 시절과 '필립 말로'와 '테리 레녹스'가 살았던 시공간은 별로 차이가 없다. 장편의 초반에 등장하는 주차원의 말대로 당시는 "경쟁의 시대"다. 도대체 경쟁의 시대가 아닌 시대는 없었다. 아니, 없다. 산책로 집 앞만 나가봐도 모두 경쟁을 하고 있더라 같은 이야기는 좀 따분하겠지만 사실이고, 환웅의 시대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시대 이순신의 시대 칼 막스의 시대 YS의 시대 그리고 지금 시대 모두가 경쟁의 시대라는 것도 사실이다. 탐정 소설을 읽고 이런 것을 느끼게 되지만 어쩐지 나한테는 위로가 된다. 같은 말로 범죄의 시대 아닌 시대도 없었고 경찰은 늘 그렇고 검시관도 늘 그래 왔고 깡패도 늘 그래 왔고 갑부도 늘 그래 왔다는 거지. 최소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한탄할 일은 아닌 것이다. 툭 하고 돌이켜보면 뭐든 있었던 것들이 처음처럼 덮쳐오는 거란 말이다.

주워듣기로는, 이 장편에서의 말로가 가장 수다스럽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말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 말로는 기름지면서도 깔끔한 비유를 쏘아댄다. 이런 말도 한다. "인간의 재능을 이보다 더 정밀하게 낭비하는 경우는 광고 회사를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그 대상은 '체스'다.) 밑줄을 치고 싶은 수많은 레토릭들이 있어서인지 '챈들러'의 작품을 '추리'라고 해야 할지 '탐정'이라고 해야 할지 '문학'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말로는 이런 말까지 주워 삼키니까. "이별을 할 때마다 조금씩 죽어가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마도 영어로 이 '롱 굿바이'를 세 번 읽었을 테다. 세 번쯤 읽으면 몸에 배기 마련인데 나는 당연히 번역으로 읽어서인지 심하게는 하루키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해본다. 한 번만 읽어서 그런 것일까? 넷플릭스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금의 작가 지망생들도 세 번쯤 읽으면, 하루키까지는 아니어도 90년대의 극작가만큼은 쓸 수 있지 않을까?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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