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페이스북에 새벽의 바다수영 장면을 올려대는 내 친구 ㄱ군은 젊은 시절에도 기개가 좋았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의 야간자습은 특이했다. 강당 같은 곳에 모두 모여서 야자를 하는 방식이었다. 이곳은 일층과 이층으로 되어 있고, 일층은 일반 독서실 같은 층고와 분위기, 이층이 바로 강당과도 같은 공간인데 큰 책상들이 점호를 받을 것처럼 도열해 있었다. 일층은 3학년 전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그곳은 칸막이가 쳐진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고, 이층은 일이 학년이었을 텐데 칸막이가 없는 다인용의 큰 책상이었고 자리배정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다. 이층은 강당처럼 생겨서 앞쪽에 높은 단상이 있었다. 라캉이 비유한 원형감옥까지는 아니지만 그 단상 위에서 그날의 담당교사는 2층 전체를 지켜봤다.
3학년은 아니었던 그래서 이층에서 야자를 했던 어느 날 밤, 그 밤의 담당은 체육 선생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작대기 하나를 뒷짐에 들고 책상 사이를 천천히 누비시며 관찰을 하시었다. 와중, "잘하고 있나?"라고 공부를 방해해가며... 그때였다. 선생이 ㄱ군의 후방으로 접근했다. "잘하고 있나?"로 방해하는 체육 선생, 그에 ㄱ군은, 당신일이나 잘하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ㄱ군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기말고사를 앞두면 냉골 바닥에서 뜨거운 설탕을 타 마셔가며 함께 공부하던 ㄱ군이 존경스러워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ㄱ군이 나중에 털어놓은 바에 의하면, 상상 속에서 잠꼬대처럼 그렇게 말했다나 뭐래나....
"KEEP CALM & CARRY ON"
눈물 나게도 저 'Keep Calm'은 '가만히 있으라'와 닮았다. 나치의 공습을 앞두고 섬나라 켈트족 정부가 방방곡곡 읊조렸다는 저 카피는 온갖 문구로 교체되어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보다 적어도 천 배 이상은 '바리에이션'되었다. 'Carry On'의 좋은 예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나온다.
Mama ooh / Didn't mean to make you cry / If I'm not back again this time tomorrow / Carry on, carry on / As if nothing really matters
어린 아들은 어머니가 평온하길 바란 나머지 의붓아버지에게 총을 쏜다. 어머니가 평온할지 평온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소년의 의도는 어머니의 평온함을 지키는 것이다.
반면... 'Keep Calm & Carry On'이 놀림감이 되는 것은 '가만히 있으라'와도 같은 '화자'가 알아서 하겠다는 책임감의 기만 가능성 때문이다. '강당에 불이 나더라도 계속 공부하시오', '나라 경제가 절단 나더라도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 '자식이 있으니 남편에게 맞더라도 참고 사시오' 같은 'KEEP CALM'의 방만함은 도구성이 난립하는 정신세계로 확장될 수도 있다. 심하게 블러핑을 해 보면 가령, '믿습니까? 믿으시면 영생을 얻습니다'와도 같은 사이비가 되고, 멍청한 프로파간다가 되고 만다.
과거, 나라에 큰 사고가 발생하면 국가권력이라는 최상위의 권위가 변명이랍시고 내뱉는 헛소리 중 하나가 '이렇게 될지 몰랐다'는 말이다.
어떻게 될지 몰랐다고?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어야 한다. 네가 국가라면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