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사는 것'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밋밋한 느낌을 전하려고 하는 글도 여러 번 쓰게 되는 것 같고... 어떤 것들이냐 하면,
걱정이 사라지면 또 걱정이 탄생한다는 것.
사는 것이라는 게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는 것인데... 음... 예의를 가진 채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별로 두렵지 않다는 것.
말을 하고 글을 쓰는데 들리고 읽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상업성이 생기는 것과는 별개라는 것.
그래서 사는 것은 즐거운 것이고, 즐겁다 보니 실수나 후회도 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음악 보다도 어떤 소리를 즐기게 되는 것도 나이가 쌓이면서 변화되는 점인데, 이 타이핑 소리도 들을만하다는 게 그 거룩한 행복의 포인트가 되다니!
기약 없는 스토리의 영화를 즐기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치인 것 같다.
요즘 들어 어쩌면 '거대한 스토리'를 생각하고 있고, 내 차는 지하주차장에 방치된 지 반년이 지난 것도 같고... 뭐 그렇게 살아간다. 일이 있으면 지하철을 타고 일을 보러 가는데 사무실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 시대를 틈타 사무실은 내게서 아주 멀어져 버렸다.
이 모든 주절거림을 한 마디로 표현해보는 것을 사유하고, 그것을 즐긴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어수룩한 자신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그리 담백하게 처리해버리는 기술이 혹 이런 것은 아닐까. 이런 한 마디의 요약이 아닐까.
라디오에서 바흐의 유명한 아리아, 마태수난곡의 그 아리아가 흘러나온다.
저건 더 담백하다. 아름답다.
연휴의 직전. 인생은 계속되는 연습이고 죽는 날까지 실전은 없다고 느낀다.
그게 다다.
그 프랑스 여자, 연인이라는 불세출의 소설을 썼던 그 프랑스 여자의 마지막 책의 제목이다.
쎄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