觸: 세상 속으로

정혜윤, 아무튼, 메모

by 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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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이렇게 지지부진한가 느낄 때가 있어요. 한 때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고 또 또 그렇게 느끼고는 하죠. 뭘 해보고 싶은 것도 없답니다. 한 달 벌어서 겨우 한 달 먹고사는 처지긴 해도 이런 처지가 계속되니까 그게 또 지루합디다. 먹고 사니까 그런 거겠지요.

제가 어릴 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거지가 있었어요. 막 거지라고 표현해도 되나 싶은데... 그분들 대단했습니다. 요즘이야 주택에 세를 들어 사는 분들은 지층이거나 2층인데 우리 집은 부친께서 공무원이라서 그랬던지 양옥 1층에 살았었어요. 아파트면 거지가 없죠. 집 마당에 거지가 들어와요. 이렇게 오는 거지들은 보통 한쪽 팔이 없거나 손이 없거나 발이 없거나 다리가 없어요. 죄다 머리하고 심장은 있었으니까 살고 계시고 그래서 먹어야 하고 그런 거죠. 모친이 김치며 밥이며 어찌어찌해서 담아드려요. 그러면 아무 말도 없이 뒤를 돌아 대문 밖으로 나갑니다. 완장을 찬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대부분 상이군인, 그러니까 전쟁에서 다친 분들이었습니다.

옛날 사람처럼 이런 예를 들게 되었습니다만 '처럼'이 아니고 옛날 사람이어서 그래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도 살기 위해서 이랬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도, 남의 집 대문을 드나들고 그것도 몸을 끌면서 드나들면 무섭기도 했는데... 삶이 지지부진하다고 지루하다고 어쩌냐고 느꼈을 거라는 겁니다. 하긴 타인의 예가 그것도 과거의 예가 큰 의미는 없습니다.

오늘 어떤 책을 읽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저자는 책을 읽고, 또 메모를 하고 그것으로 글을 쓰고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대학 방학 동안 600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 있다는 전설이 횡행하던 시절을 살았는데요. 언젠가부터 소설을 쓰고 먹고 살 거라고 다짐하는 바람에 고교를 졸업하고 하숙집을 정리하는데 온통 책이었답니다. 막내 숙부가 쌀자루에다 그 책을 담아서 실어 날랐던 기억이 나네요. 대학 시절에도 책을 조금 읽었을 겁니다. 읽었다기보다는 사다 날르기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다 책 읽기를 아예 관둔 시절이 십 년 정도 있었어요. 머리를 비운 게 아니라 삶을 비워버린 건지도 모르는데 서른 살 무렵부터 마흔 살 정도까지였을 겁니다.

사람마다 삶을 이어나가는 방식이 있다고 봐요. 아내는 모르긴 몰라도 시간을 매우는 방법으로 책을 읽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책을 읽어요. 저도 가끔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만 제가 삶을 이어나가는 주된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그 방법을 실행 해나가지 못하면 거지처럼 살더라도 지루해 못 견뎌낼지 모르니까요.

책 읽는 재미, 이성을 사귀는 재미, 영화 보는 재미, 쓰는 재미, 술 마시는 재미, 대화하는 재미, 쇼핑하는 재미, 운전하는 재미, 여행하는 재미, 캠핑하는 재미, 요리하는 재미, 먹는 재미... 여러 가지 재미를 섞어서, 보통은 그렇게 해서 삶을 이어나가잖아요? 저는 다 재미없어요.

저는 사람을 들여다봐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 자신과 비교는 금물입니다. 제 멱살을 쥐고 흔드는 사람도 들여다봅니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생각을 하며 무엇을 목적으로 행동을 하는지 사람을 생각해요. 굳이 이해하려고까지 하지는 않습니다만 이해될 때가 많아요.

사람을 이해하는 이해 - 아, 농담입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이해로운 삶이 지루함을 없애는 방식입니다. 모름지기 사회적이라는 것이 '비대면'을 포함하는 게 확실해졌잖아요? 책 읽기 말고도 아내는 오래된 아파트 4층 베란다 작은 의자에 앉아 주차장을 내려다보기를 합니다. 주민들의 주차를 이해하는 것이 느긋하니 재미있다고 해요. 영화들을 또렷이 보세요. 소설을 따박따박 읽어보세요. 거지든 왕족이든 지루할 때 뭘 하냐면, 몇 가지 없습니다. 책을 읽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외도를 하거나 죽음에 이르죠. 그렇지만 몇몇은 그런 지루함을 타파하는 행동을 수단으로 다른 꿈을 꿉니다. 책을 쓴다거나 담배를 끊는다든가 아름다운 연애소설을 쓰죠. 사후 세계에 대해 말하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많은 것이 있다는 것. 그게 당신에게 달려있다는 것. 그게 어떤 저자의 말이었습니다.

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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