觸: 재즈 활용법

Bill Frisell, Small Town

by 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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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정신적 상간남들의 시쳇말 중에, "어떤 여자가 좋아?"라는 물음에 "다른 여자!"라고 답하는 대화가 있다. 물론 나도 그런 얘길 처음 들었을 땐 웃었다. 왜 웃겼는지 몰랐지만 웃었다. 공감이 되었던 거겠지. 이성을 음악에 비유해서 미안하긴 한데 음악이 그리 하찮은 것은 아니라는 신념에서...

긴 시간 음악을 듣다 보면 질리도록 들어서 질려버리는 음악이 있고, 질리도록 들어서 질려버리지만 또 듣고 싶은 음악도 있다. 쉽게 질리지 않는 음악을 찾아들어가는데 질리지 않으려면 좀 어렵고 좀 흥미롭고 좀 아름답고 좀 신랄하면서 좀 투명하고 또 좀 거칠기도 해야 해서 질리기도 전에 음악을 바꿔대야 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인디음악이라든가 현대음악이라든가 재즈라든가 재즈 중에서도 프리재즈라든가 그런 음악들을 찾아 헤매었다. 아니라면 그런 음악들을 잘 활용한 OST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참 많은 레코드들을 사들였다. 스트리밍 세대가 아니다 보니 그랬던 건지 '소유보다는 경험'이 아니라 '경험보다는 소유'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발에 차이는 것이 CD고 구석에 쌓이는 것이 LP인 현실이다. 물론 들을 때는 대부분 스트리밍. 그리고 방구석에서 악기를 연주하면 십중팔구 '블루스'지 '재즈'는 아니다. 그런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구매 LP는 '빌 프리셀(Bill Frisell)'이다. 이 프리 프리 한 선생님이 Thomas Morgan이라는 젊은 베이시스트와 촌구석 칼국수 같은 김이 펄펄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앨범을 이태원에서 사 온 기억이다. 둘이서 이 앨범 이후인지 이 앨범 이전인지 저 유명한 '빌리지 뱅가드'에서 또 연주를 했고, 그것도 앨범으로 출시되었지만 그건 차마 사들일 수 없었다. 나는 스트리밍 세대로 편입했으니까.

어떤 책에 보니까 유명 소설가 한 분이 그런 인터뷰를 했다. "소설 쓸 때에는 내가 본 적 없는 영화의 OST를 들어요." 본 적 있는 영화의 음악을 듣다가는 영화의 스토리가 떠올라서 소설 집필에 방해가 되어서였다. 어쩌면, 스트리밍이든 앨범을 사들이는 것이든 나 또한 음악을 고르는 기준이란, 본 적 없는 영화의 OST가 아닐까. 빌 프리셀의 레코드이든 '키스 재럿'의 레코드이든 본 적 없는 OST와 거의 비슷하단 말이지. 그리고 그런 음악들을 뒤섞어 놓으면 OST와 다를게 뭐람.

가만 보면 OST와 비슷한 음악은 사실 재즈다. 엄밀히 말할 필요가 없다면, 프리 재즈다. 그 Free가 맞다. '오넷 콜먼'이라는 불세출의 프리재즈 연주자가 있었다. 멜로디도 화성도 규칙도 약속도 없이 마구 색소폰을 불어 제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했을 것이다. 재즈 씬의 활로가 탁 막혀있는 타이밍이었던 거다. 퓨전 이후의 재즈 이디엄은 출현하지 않은 상태쯤 되고, 록음악이 활개를 치고 있었을 테지. 한날 재즈의 거성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귀에도 오넷 콜먼에 대한 소문이 들어갔다. 마일즈는 친히 오넷의 연주를 들으러 갔다고 한다. 마일즈와 함께 오넷이 연주하는 클럽에 방문한 어떤 뮤지션이 마일즈에게 물었다. "마 선생님, 도대체 저게 음악이에요? 그냥 시끄럽기만 한데요?" 그러자 마일즈가 대답한다. "난 좋은데." 그러면서 마일즈는 덧붙인다. "최소한 클리셰는 불지 않잖아?"

그 날 마일즈가 영감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마일즈는 [In a silent way]라는 내가 제법 즐겨 듣는 프리재즈 성향의 명반을 남기고 있다. 중요한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프리재즈든 재즈든 그것은 형식에 불과하다. 그 형식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는 당연히 연주자의 몫이다.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더블베이스 둘이서 어떤 작은 동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기타에 전기를 조금 먹여줬더니 소리가 커지네, 같은 그런 이야기로 전주를 갈음하고 멜로디가 들어가는데 이건 늦은 밤 화장실에 앉아 듣던 막걸리에 취해 귀가하시는 아버지 허밍 같기도 하다. 스몰 스몰 하는 이야기들, 스몰 야구니 스몰뭐뭐하는데 스몰 타운도 참 좋구나.

간소한 악기들로 작은 이야기들을 소곤대는 빌과 토마스이니까 이 영화는 그 옛날 이문구 선생의 연작 '관촌수필'쯤 되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장혁이 나왔던 드라마 '왕룽일가'도 떠오른다. 이렇게 다른 스토리가 떠올라버리면 안 되는데 말이다. 하긴 내가 김연수 같은 유명 소설가 선생님은 아니니까 괜찮기도 하고.

9.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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