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 오트 쿠튀르
일본 만화 좋아하는 친구 놈 I가 해준 얘긴데, 미야자키 상이 신품 만화영화를 내기로 해놓고서는 늦어졌대 그래서 약속한 날짜에 만화영화가 못 나온 거야 근데 미야자키 상이 대신 광고를 했대. "순조롭게 지연되고 있습니다."
새벽에 뉴스를 보는데 손혁 감독이 아웃. 현역 선수가 아닌, 1루로 뛰지도 않은 감독이 왜 아웃을 당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면이 있다는 게 세상의 맛이기도 하겠지 하고 생각해보긴 하는데 도무지 이건 패러독스 아니면 뭐냐 싶기도 하고 역사의 행렬주의 같기도 한 것이라... 나는 야구를, 설렁탕 먹다가 저쪽 벽에 보이면 하이라이트나 보는 거지 뭐. 별 관심이 없고, 순재가 키움의 팬이라기에 키움이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거든. 단발머리가 옛날 사옥 옥상에 야구장을 깔아 뒀더라. 그 냥반이 구단주인가? 야구장은 인조잔디였는데 거기 앉아서 OT를 듣던 기억도 난다. 상관도 없는 그 집 직원들이 가던 술집이 야구장이고, 웨이터는 이승엽이었던 것도 생각은 난다. 우리 기획 본부장인 B형이 화장실에 간 사이, 그쪽 본부장이 그러더라고. "저희 담당을 바꿔주세요." "왜요?" "B 씨는 감이 없는 거 같음." "그래요?" 인간은 일곱 겹인지라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B형은 헤롱헤롱 하다가 부동산 전문 대행사로 가셨다. 그는 그 세계의 프런트맨이 된 모양인데 연락은 닿지 않았다. 어떤 시집이 수단과 주체의 경계에 있다.
구경에서 감상이 되었던 영화를 다시 구경으로 만든 홍상수가 있었다. 한글도 마찬가지여서 구어를 문자로 만들었는데 언젠가부터 제대로 문어를 향해 치달아간다. 그때, 어떤 문자들이 수단인 척 아슬아슬하다가 주체인 양 으리으리 뽐낸다. 사실 '문장'은 내 단어. '문자'는 잘 모르겠다. 문자가 주체가 되는 극단적인 예는 '푸르티거'거나 '한강체'다. 그것을 책으로 만들면 상수체의 집결쯤 되겠고 안 선생의 자제들이 한글 이름을 가진 걸 보면 애초 도입부가 다른 주체적 결단인 것이다. 보이는 것은 디자인이고 담긴 것은 한글이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시'라는 장르적 결격들이 문자를 '수단'에 이르게 하지 못하고 '주체'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시인'은 문자를 던졌지만 그것은 지독한 커브에 더스트 볼이어서 포수가 헷갈려하는 사이 타자는 허공을 쳐다본다. 예견된 것들이 몽매하다. 만화에나 나오는 '생활어'들이 왜 달 가지고 귀마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들을 만들어내는지는 문자가 가진 즐거움 때문으로 알고 있다. 투수 교체는 점점 더 관중을 흥분시킨다. 아, 세상에 농구공으로 던졌어! 마운드 위에서 풍선이 터진다. 가까이 가서 잔해를 보았더니 그게 배구공 껍데기임을 알았다. 도무지 내 공을 찾을 길이 없다고. 나는 공을 품은 채 태어났거든. 세상의 공들을 떼다가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서 다시 마루에 깔았다. 습자지를 그 위에 태운 채 필사를 해 보거늘 도무지 모름지기 여야 할 공이 구르지를 않는구나.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정지를 시켰다면 세상 새삼 아름다운 그 시어들이 허공을 떠돌며 노래를 부른다. 아침 시공간을 가르며 어두워진 노련함.
'루드비히 빌 길모어'라는 음악가가 있다고 칩시다. 7악장쯤에 악상 기호가 붙어있다고도 칩시다.
"순간적으로 재미있고 아름답게 영원하도록"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