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
무조건 달리는 술고래 김 부장님,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이 차장님,
술만 들어가면 돌변하는 도 대리님.
여기 청하 주세요.
좋은 술자리엔 깔끔한 청하 -
당신에게 청합니다. 청하
소개팅 비슷한 거였다.
기억으로는 한 짝, 그러니까 스무 병 정도 마셨다.
하지만 그렇게 사 마실 돈이 없었을 게 틀림없다.
기억이 과장된 것 같다.
입대 전 1학년이나 2학년이었으니까
하루에 대략 천 원 정도 여유돈이 있었을 것이다.
또 그렇지만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의
거금이 있었으니 소개팅을 갔겠지.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영주와 나는 낮술을 마셨다.
너무 어리거나 늙으면 낮술도 힘겹다.
그래서 그랬던지 영주가 청하를 주문했다.
(도저히 안주는 기억나지 않는다.)
술이 나올 때까지 아마 술집 창 밖으로부터
햇살이 쨍하게 쏟아져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청하를 마셨다.
대흥사 유선여관 올라가는 계곡에는
해 뜰 녘부터 물이 소리 내어 흘렀다.
영주와 둘이 그 물을 내려다보며 앉았다.
일행들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다 슬쩍
마주 보았다.
화랑 같은 술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거리를 내달리던 버스에서 청하를 봤다.
그냥 '당신에게 청합니다'라고 버스의 창 아래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었다.
카피만큼이나 좋은 술이다.
이 카피가 왜 좋으냐 묻지 마라,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