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un Hyun Jul 01. 2024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카피를 사랑합니다 

돌이켜보면, 철학과에 입학해서 처음 들어 본 카피는, 헤겔의 법철학에 나오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였다. 

저 말은 보통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라고도 번역한다. 그래서 과에는 '황혼녘'이라는 학회가 있었고, 그들은 큰 맥락 없이 흔히 PD라고 부르는 노동운동을 했다. 86학번 석 모 선배가 주동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황혼녘'이라는 분위기는 (학생운동에 대한) 시대적 맥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철학회'리는 민족해방운동을 하는 학회가 있었고, 이들이 다수였다. 여기에는 89학번 이 모 선배(며칠 전에 나랑 기타 보러 다니던)가 있었다. 멍청한 신입생 93학번이었던 나는, 곧잘 석과 이와 함께 셋이 술을 마셔댔지만 단 한 번도 헤겔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 나는 지금도 헤겔의 쓰잘데 없는 난해함을 두려워하고 있다. 


카피는 분위기나 겉모습이다. '이제 와서야' 이해하는 바가 많다. - 당시의 나는 황혼녘과 '사철'에 맞서 '탁류'라고 이름 지은 학회를 만들었다. 탁류는 문학을 공부하는 학회였는데 우리는 첫 모임에서 세상의 맥락을 놓친 채 (혹은 끄트머리를 부여잡은 채) 샤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로 부엉이처럼 '앙가주망'을 공부했다. (그때 탁류의 첫 모임에 헤어진 여자 친구가 등장해서 페미니즘 강론을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해할 수 없어서 블레임 하는 카피는 없다. 누군가 저항하는 카피는 '너무 쉬워서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니까 쉬운 것이다. - 이제야 나의 부엉이는 날아오른다. 

 



작가의 이전글 7th 코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