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면, 항상 즐거우시다. 따져 보면 즐거울 일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매번 즐거운 모습을 보면, 일부러 즐거운 척 하시는 건지 정말 즐거워 그러시는 건지 궁금할 때도 있다. 오히려 마음이 불편한 건 나다. 곁에서 살갑게 모셔드리지도 못하고,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항상 죄송할 따름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즐거움 마저 자식을 배려하는 것은 아닌지 싶어 마음 한 켠이 아프다.
어머니는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빨리 간파하고 하루빨리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어야 하는데, 지난 9월에야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약을 드시고 계신다. 요즘도 전화를 하면, 누구랑 통화했는지는 기억을 하시는데 내용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기억하시니, 내가 다시 전화해서 어머니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확인할 수는 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 하나는 어릴 적 나와 동생을 키울 때 이야기를 하면 생생하게 기억하신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뇌는 지금 옛날 기억을 담은 메모리는 그대로 정상 작동을 하고 있는데,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는 메모리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기억을 입력하려면 몇 배의 노력이 든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어머니도 알게 되셨는지 노트에 빽빽하게 필요한 것들을 써놓고 계신 것도 우연히 보았다.
한 번은 어머니의 노트를 읽어보다가 ‘OO씨와 마트에 감’ 이라고 써있는 것을 보았다. 이름도 낯선 OO씨는 아버지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평소에 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7살이나 나이가 적다. 그런데도, 그 호칭은 나와 동생이 태어나기도 전, 두 분이 결혼하기도 전 연애 시절 아버지를 불렀을 호칭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그러니까 마음 한 구석에선 여전히 ‘OO씨’인데, 어머니의 알츠하이머가 갑자기 그때 기억을 불러낸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문득 엄마가 요즘 즐거운 것은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계셔서 그런건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딱 여기서 멈춘다면 엄마 입장에선 치매도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한테 더 자주 전화해서 옛날의 즐거운 기억들을 불러 내 드리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엊그제는 내가 초등학교(그때는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똥을 뒤집어썼던 일 기억하시냐고 여쭤봤더니, 어렴풋이 떠올리시다가 다 기억이 나셔서 그랬는지 한참을 깔깔거리고 웃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부산 영도의 산동네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많았다. 분뇨를 수거하는 트럭이 들어오기도 힘들 정도로 길이 좁아서 골목에서 똥지게를 지고 지나가는 아저씨들을 가끔씩 마주치곤 했다. 이 아저씨들은 양쪽으로 똥물이 그득 담긴 큰 바케스를 양쪽으로 매단 지게를 지고 훠이훠이 손사래를 치며 골목을 다녔다. 그럴 때는 길가는 사람들이 다 멈추고 옷이나 몸이 닿지 않도록 벽에 바짝 몸을 붙이고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날 나는 아이들과 ‘다망구’(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편을 지어서 하던 술래잡기 놀이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를 하다가 이 ‘똥퍼’ 아저씨들과 부딪혔다. 골목에서 튀어나오다가 미처 똥 퍼를 못 보고 부딪혔는데 얼른 몸을 피했지만 잠시 균형을 잃은 아저씨가 주춤하는 사이 똥통에서 살짝 넘친 똥물에 내 왼쪽 어깨부터 팔꿈치 손목까지 똥세례를 받은 것이다. 아이들은 ‘으 드러’ 소리를 지르며 슬금슬금 피했고, 아저씨도 소리를 빽 지르고는 갈 길을 갔다. 혼자 남은 나는 엄마 얼굴만 생각났다. 아직 추운 2월, 학교가 개학도 하지 않은 봄방학이었다. 마당에 들어선 나를 보고서 엄마는 그 자리에서 세워 놓고 운동화(여기도 똥물이 튀어 있었다)부터 바지 윗도리까지 홀라당 벗기고선 물을 바가지 째 부었다. 덜덜 떨면서 씻었던 기억이 난다. 똥독이 오를까봐 얼른 씻어낸 것이었다고 한다.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어머니는 신기하게도, 어제 내가 전화했던 것은 기억 못할 때가 많으면서 40년 전 마당에서 아들 옷 홀라당 벗겨놓고 등짝을 후려치며 씻기던 기억은 하시는 것이다.
약을 드시면 치매 증세가 진행되는 속도가 훨씬 늦춰진다고 한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마음의 부담을 전화 걸어 엄마와 수다 떠는 걸로 좀 덜어 보려고 한다. 엄마에게 어린 시절 궁금해서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 하나씩 하나씩 찾아서 물어보려고 한다. 내 나름대로 엄마의 뇌에 말을 걸어서 기억 세포들, 메모리를 되살리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