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경례를 하고 천명이 넘는 20대 초반의 빡빡머리 남자들이 가족을 뒤로 한 채 사자들에게 단체로 쫓기는 버팔로의 무리들 마냥 어깨동무를 하고 건물뒤로 달려간다.
눈 앞이 뿌옇다
내 옆에 어깨동무를 한 몸집이 작은 아이의 엄마가 와서 “00야 잘가라” 하고 말하는데 그때 이유 없이 눈물샘이 터졌다.
나는 특별소대에 입소했다
비.만.소.대.
6주간의 훈련과정.
매일매일 육체적인 한계를 시험 받았다. 밖에서라면 절대 이정도 한계까지 육체를 끌어올리지 않을텐데. 교관이 무서웠고, 내 옆의 동기들은 다 해냈다. 맞기 싫어서 혼나기 싫어서 쪽팔리기 싫어서 힘들어도 다 했다.
당시 훈련소에는 살이 좀 많은 훈련병들을 따로 빼내어 소대를 따로 만들었다. 특수소대가 아닌 특별소대라는 이름으로. '비만소대'였다. 나는 187cm 92kg이었는데 이게 비만인가? 지금도 의아한 신체사이즈지만 군대에서 하는일이 모두 그렇듯 어쩌다보니 차출되었다. 대민 홍보용으로 만든 특별소대였다. 동아일보에서 나와서 취재를 해갔다.
우린 죽어도 뺀다 살.미.도.
비만소대는 정규 훈련이 끝나면 식사당번이나 물 당번 같은 각종사역들에서 면제되는 대신 그 시간에 다른 운동을 하는 특권이 주어졌다. 살을 빼야했으므로. 당시 동아일보 기사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우린, 죽어도 뺀다..'살 미 도' . 살 뺴는 전략은 이러했다. 밥 먹기 전에 굴려서 밥맛을 없게 만든 다음 식당에 보내어 밥을 많이 먹지 못하게 하자. 굴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1.5km 구보다. 운동장을 세바퀴 정도 돈 다음 쉴 틈도 없이 식당으로 보내진다. 다른 병사들은 다 밥을 먹고 연병장에서 쉬고 있는데 우린 밥을 급하게 먹어야 했다. 숨을 헐떡 대는데 밥맛이 있을리가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총을 들고 전투 구보를 했다. 첫주차는 1.5km. 둘쨋주는 3km. 이런식으로 1.5km 씩 거리를 늘려갔다. 셋째주떄인가 구보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넷쨰주때 셋째주에 뛰어야 할 4.5km를 목요일에 뛰게하더니 토요일에 6km 를 뛰게했다. 6km를 뛴 그 날은 정말 죽는줄 알았다.
전투 구보를 하고 나면 목욕탕에서 씻을 수 있었다. 6km를 뛴 날은 너무 목이 말라서 수돗물을 벌컥벌컥 계속 마셨다. 옆에 인간들이 빨래를 한다고 비눗물이 약간 섞인 물을 본능적으로, 살려고 마셔댔다.
특별한 욕탕 녹차탕
그곳에는 훈련병들의 지친 몸의 피로를 풀어줄 대형 욕탕이 있었다. 그리고 녹차주머니가 탕안에 잠겨 있다. 이른바 녹.차.탕. 뜨거운 수돗물에 녹차잎이 잔뜩 들어 있는 주머니를 넣어 놓은 것이다. 녹차탕을 느낄새도 없이 훈련병들은 얼마 씻지도 못하고 탕 밖으로 나와 샤워를 해야 했다. 보급품으로 비누 하나가 나오는데 그걸로 몸도 씻고 머리도 감고 다 했다. 녹차탕 할 돈으로 비누나 더 줬으면 하는 생각을 지금 하는데… 그냥 뜨거운 수돗물이나 녹차탕이나 크게 차이가 있을까.
훈련병들에게 녹차탕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으나.. 현대화된 병영 시설을 홍보하는데는 아주 좋은 소재임에는 틀림 없다. “해군훈련소에는 녹차탕이 있다?” 라는 제목으로 국방일보에 기사가 나간것 같기도 하다. 아 이 홍보 전쟁.. 누구에게 의미가 있는가.
요가하는 훈련소
또 이상한 걸 했는데 아침마다 TV를 보면서 하는 요가다. 다들 잠에서 깨어나 TV에 나오는 고양이 자세라든가..그런걸 따라했다. 현대화된 병영…이란 말이지.
그건 그렇고 그때 그 녹차탕은 얼마나 더러웠을까. 잘 씻지도 못하고 땀에 절은 그 시커먼 짐승 같은 20대 초반의 남자들이 들어갔다 나온 그 탕.. 내 기억에 나는 그 탕에 잘 안들어갔고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던 것 같다. 그래도 씻고 나오면 노곤노곤하니 진해의 밤 바람이 상쾌했던 기억이 있다.
92kg이 6주간 훈련을 마치니..80kg이 되었다
아직 훈련소 이야기가 남아 있다. 녹차탕을 여러 번 갔다오고 6주간의 훈련소가 끝날 무렵 내 몸무게는 92kg에서 12kg이 빠진 80kg이 되었다. 살이 점점 빠질수록 구보가 쉬워졌고 마치 내가 말이 된 것만 같았다. 이후 2년 2개월이라는 군생활동안 83kg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제대하고 87kg이 되더니 97kg을 최고점으로 찍고 지금은 한 90kg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