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블루라군

거래처와의 회식일정을 피했더니 아이슬란드가 나에게 다가왔다

by 감운장

2017년 여름, 아이슬란드를 갔다 왔다.


꼭 2가지를 물어본다.


거긴 왜 갔니?

오로라는 봤니?


아이슬란드에는 왜 갔니?

당시 나는 한 오픈마켓과 제휴를 하는 부서의 대리였다. 오픈마켓은 갑이고, 내 회사는 을이었다. 거래처의 높으신 분과 우리쪽 높으신 분이 만나서 회식을 한다고 전해 들었고 나는 무조건 피하고 싶었다. 당시 팀장이 그때 회식을 할지 모르니 시간을 비우라했고, 아 저 휴가가는데요.. 라고 말했다. 그 회식에 가면 나는 술잔이 비면 술을 따르고 술이 없으면 술을 시키고 아저씨들의 농담에 허허허 웃고.. 먹지도 못하는 술을 왕창 마셔야한다. 몇 번 회식을 했지만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것에 익숙해진다면 그거야 말로 무언가의 끝이 아닐까)


거래처와의 회식을 피하고 싶었다. 미치도록.

이런 자리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고 선이 있다. 갑의 높으신 분이 술자리를 주도하고 을의 높으신 분은 그말에 동의하며 대꾸해주고 을은 비위를 맞추고 이야기를 듣고 끌려다녀야 한다. 이 룰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갑의 높으신 분이 이야기를 하거나 '나는 갑일세'라는 대화주제로 나를 건드리면 (그들이 보기엔) 말대꾸를 하거나 최대한 할수 있는 범위 한에서 기분을 나쁘게 하려고 했다. 서로서로 고개를 숙이고 그 중에서도 말단인 나는 최대한 고개를 더 숙여 우리가 더 못났으니 잘 봐주십쇼 하고 자리를 확인 하는 자리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다가도 째려보고 뻣뻣하게 고개를 들거나 했다. 연기를 하다가도 본모습이 나오는 3류 배우정도였다. 그냥 이 자리를 피하는게 나를 위해서도 내 상사를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다.


굴욕감을 느끼기 보다는 휴가를 가자. 회식일정이 있는 그 주에 휴가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딱히 가보고 싶은 곳이 없는 것이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저기도 가기 싫고 그런 상태. 한국에서 최대한 멀리 가보자 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아이슬란드 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홧김에 지른 것 같다. 지를 때는 질러야지. 경제적인 후유증은 이후에 너무 컸지만…


아이슬란드의 케플라이야크 공항에 내렸다. 하염없이 내 소중한 55L 빨간 배낭을 기다린다. 뱅글뱅글 캐리어가 돌아가고 모니터에서 광고영상이 나온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방신기가 나와서 롯데 면세점을 광고 한다거나 창덕궁 달빛기행 같은걸 광고하는 것이다. 그 중에 내 눈길을 끈 건 아이슬란드의 온천 블루라군의 광고였다. 비키니를 입은 젊은 금발의 여자가 새파란 온천에서 혼자 물장구를 친다.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와 이건…홀릴 수 밖에 없다. 이게 바로 북구의 여자인가. 저기에 가야겠어!! 라고 이때 생각…을 한건 아니다. 이미 오기전에 저길 갈 수 있도록 예매를 다 해놓았다. 그 짧은 광고가 반복적으로 계속 나왔다. 내 가방은 나오지 않고, 모든 캐리어가 다 나온다음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배낭은 미리 앞에 빼놓았지 뭔가.. 이런.. 그래도 덕분에 좋은 걸 봤다.


20170624_173814_HDR.jpg 웰컴. 비키니를 입은 서양 여성이 나를 반겨준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는 백야였다.

밤 10시에 호스텔에 도착했다. 밖은 분명 가을날 오후 5시의 느낌이다. 숙소의 커텐은 검은색이었다. 밤에는 빛을 완전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방안의 서양 노인과 인사를 했다. 나에게 별 관심 없어 보인다. 엄청난 비행시간과 수면부족이었지만 여행의 흥분감에 숙소를 뛰쳐나간다. 그냥 주택가였다. 그냥 주택가였어. 근데 너무 좋았다. 신선한 무언가가 내 안에 자꾸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레이캬비크를 굽어보는 대성당 할그림스키르캬가 보인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옮겨진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신선한 공기와 밤 10시의 햇살이라니.


DSCF0375 (1).JPG 1945년에 착공하여 1986년에 완공된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 할그림스키르캬

버스투어를 했다. 레이캬비크 근교의 폭포와 빙하와 바다.. 자연을 본다. 국도의 휴게소에서 혼자 앉아 양 뒷다리를 먹는다. 와.. 양고기가 이런 맛이었어? 한국에서 먹던 양꼬치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물론, 가격도 많이 달랐다. 양고기를 먹고 바다를 보고 혼자 셀카 놀이를 한다. 외롭다. 이 쓸쓸한 기분을 느끼려고 내가 여기에 온 걸까. 공기와 물이 너무 좋아서 이 기분조차 사치스러운 느낌이다. 이틀을 꼬박 버스투어를 했다. 마지막 날 아쉬운 마음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레이캬비크 곳곳을 헤메다가 블루라군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아이슬란드는 ‘세계의 끝’ 느낌이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황량한 지형때문일수도 있고, 처음 보는풍경때문일수도 있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집과 사람이 많이 안보이기 때문일수도 있고 그냥 ‘세계의 끝’에 내가 있다! 라고 생각하고 싶은 내 마음 때문일수도 있다. 블루라군도 도시와 동떨어진 곳에 있다. 이름이 참 멋져 보이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온천 물이 나오는 온천파크 정도의 시설이다. 다만 주위에 집과 상점과 밭이 없고 단독으로 있기 때문에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것 뿐. 온천물이 나오는 노천 풀에 들어가 전세계에서 아이슬란드에 놀러온 관광객들을 바라본다.


DSCF1213.JPG 블루라군

이 파란 온천물을 혼자 허우적거리는건 나뿐이다. 커플, 가족이 대부분이다. 입장권에 bar를 이용할 수 있는 음료권이 포함되어 있다. Bar는 야외 풀 곳곳에 위치해 있다. 맥주나 음료수를 먹으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근데 나는 좀 그랬다. 혼자서 맥주를 한 잔 먹는데 맛이 참 없다. 공항에서 봤던 신비로운 블루라군 느낌이 전혀 아니잖아. 서양 엘프가 날 기다리고 있을 줄 알고 왔는데 엘프는 커녕 외로움만 배가 된다.


블루라군 안에는 NORTH66 이라는 아이슬란드 아웃도어 매장이 있다. 둘러보다 옷을 샀다. 레이캬비크 곳곳에 NORTH66의 광고들이 붙어 있는데 그 광고에 나오는 소녀가 너무 신비롭고 좋아 홀딱 빠져들어서 물건을 사버렸다. 무려 60만원짜리 점퍼를. 미쳤지. 살 때는 좋았지만 집에 와서 입어보니 팔길이가 너무 길어서 속상한 마음이 들어 한참을 안입고 다니다가 올해 그냥 막 입고 다니고 있다.

DSCF1211.JPG 아이슬란드 아웃도어 브랜드 NORTH66의 광고


여행지에서 산 물건은 비싸지만 도움이 된다. NORTH66을 입고 산책을 하면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청량한 공기가 생각난다. 여긴 비록 ‘세계의 끝’은 아니지만, 난 ‘세계의 끝’에서 사온 물건을 입고 있다고. 비록 made in latvia의 점퍼지만.


오로라는 봤니에 대한 답을 해야 할 때다.


여름에는 오로라가 없다.


이름 : 블루라군, Bláa lónið, Blue Lagoon

주소 : Nordurljosavegur 9, 240 Grindavík, Ic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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