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웅 레포츠

격렬한 축구 이후에는 몸을 씻어야지

by 감운장

20대 중반에 사회인이 되었고 위닝일레븐(줄여서 위닝)이라는 축구게임에 빠졌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위닝을 통해 유럽 축구에 빠졌고 몇년 간 주말이 되면 유럽축구를 꾸준하게 봤다. 지금은 위닝도 유럽축구도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손가락 스포츠 그건 바로 위닝

두달에 한번 꼴로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면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났다. 느끼맨, 아랍인, 쥐새끼, 나. 이렇게 4명이 단짝이다. 느끼맨과 아랍인은 공무원 수험 생활을 했다. 느끼맨은 2년전에 경찰이 되었고, 아랍인은 얼마전에 선관위 공무원이 되어 발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 전까지는 계속 수험생활을 했다. 쥐새끼는 작은 조선회사에 다녔고 중간에 회사를 관두고 나와 실업자 시절도 있었다. 셋은 부산에서, 나는 서울에서 살았고 내가 내려가면 우리는 꼭 위닝을 했다. 달리 할게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홈 구장 플스노리

토성 역 근처에는 플스노리라는 플스방이 있었다. 플스노리 앞에서 만나 힘껏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우리는 마치 그라운드를 밟는 선수처럼 흥분했다. 오늘은 어떤 팀으로 할까. 일대일로 하다가 중간에 이대이로 바꿔서 저녁 내기를 자주 했다. 보통 쥐새끼와 내가 한팀이 되고 느끼맨과 아랍인이 한팀이 되었다. 성향에 따른 팀 구성이다. 느끼맨과 아랍인은 덜 적극적이고 그나마 쥐새끼와 내가 이것저것 해보자고 나서는 쪽이다. 주로 아랍인과 내가 이겼고 쥐새끼와 느끼맨은 위닝을 잘하지 못했다. 골을 넣으면 정말 기뻤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환호했다.

출출해지면 근처에 있는 칼국수 집에 갔다. 면이 많은 전형적인 멸치 칼국수다. 밀가루 맛이 좋았다.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중국집에 가 고추 간짜장과 맥주를 먹었다. 돈을 벌고 있는 내가 주로 계산을 했고, 아니면 집에 돈이 많은 느끼맨이 계산을 했다. 그렇게 먹고 나면 피곤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일찍 헤어지는 법이 없었고, 술을 왕창 마시는 법도 없었다. 밤 10시까지는 같이 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우리의 발걸음은 한웅 레포츠 센터라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전국 어딜가나 있는 헬스장 + 찜질방 + 목욕탕이 합쳐진 공간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피로해진 눈을 찜질하고 몸을 풀었다.

격렬한 운동 뒤엔 목욕이

탕에 몸을 담그고 이야기를 한다. 주로 여자 이야기. 우리는 연애나 여자문제엔 서툴렀다. 주로 옛날에 사겼던 여자이야기나 혹은 얼마전에 차였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소개팅은 많이 했으므로 소개팅 한 이야기를 했다. 냉탕에서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면서 나눴던 이야기를 사실 지금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괜찮다. 너답다. 무언의 신호를 주고 받으며.


점점 우리도 늙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면 급속도로 피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렵 우리는 위닝에 질려갔고 성지 플스노리가 문을 닫았다. 닫힌 철문을 우리 넷이 가서 봤는데 그때의 허망함이란. 우리의 소중한 아지트가 사라졌다. 한 시절이 끝나버렸다. 위닝도, 한웅목욕탕도, 멸치칼국수도, 그리고 우리의 20대도.


그 때 이후 우리는 위닝을 하러 만나지 않았다. 플스방이 주위에 많지 않기도 했고 느끼맨이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딱 넷이서 만나는게 이제는 쉽지 않다. 나는 아직 서울에 혼자 있고 나머지는 부산에 있다. 아랍인은 공무원 시험에 붙어 발령을 기다리는데 아마 강원도가 될것 같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서울 생활에 지쳐 부산에 내려가면 날 맞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위닝을 했던 이 시간이 가끔은 인생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 즐거웠으면 그걸로 된건지도 모른다.


이름 : 한웅 레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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