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을 잃어버렸다면...
「게이샤의 추억」 촬영지로 유명한 후시이미나리 신사를 가는 아침, 비가 많이 내렸다. 신사 앞은 유명관광지답게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사서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오는데 70대로 보이는 노인이 내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구겨진 노란 우산을 들고 비에 머리와 옷이 다 젖었고 쓰고 있던 안경도 비에 젖어 뿌옇다. 내가 즉각적으로 행한 행동은 한국에서 그래왔듯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는 것이었다.
생면부지의 A가 도움을 청한다-> 도와준다-> 내 삶은 그대로다.
생면부지의 A가 도움을 청한다-> 도와주지 않는다-> 내 삶은 그대로다.
도움을 주지 않는 이유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득이 없이는 호의를 베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노인을 뒤로 둔 채, 길을 건넜고 다시 노인의 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편의점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를 모르겠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났던 걸까. 다시 길을 건너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여행을 왔는데 일행을 놓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중이었다. 노인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은 먹통이었다. 근처의 파출소에 데려가려고 했다. 그때 전화가 노인의 핸드폰으로 걸려왔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다시 이쪽으로 온다고 했다. 노인은 감사하다고 나에게 말하며 일행을 만나러 약속장소로 향했다. 노인이 무사히 일행과 함께 하게 되어서 좋았지만 약간은 씁쓸한 기분이다.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이 된 걸까.
축구를 하다 팔이 부러져 수술을 했고, 6주 동안 깁스를 한 채 생활했다. 처음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부자유스러운 육체가 점점 익숙해져 갈 무렵 마음도 점점 쪼그라들어 갔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봐 주고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놓아주셨다. 와플 집에 갔더니 얼른 나으라며 서비스로 와플을 얻어 먹기도 했다. 호의는 4~50대의 아주머니들이 베풀어주셨다. 고마웠다. 나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자고 생각했다.
깁스를 풀고 재활운동을 하는 시기에 지하철역에서 면봉을 팔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봤다. 서글픈 마음에 장애인의 물건을 샀다. 너무 고마워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젠 정상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같은 장소에서 짐을 들어달라는 할머니의 도움을 뿌리쳤다. 달라졌다. 분명 어릴 때는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가 있으면 지하철역 지상까지 들고 올라가는 게 다반사였다. 나는 지금 득과 실을 따지며 경계하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만을 하는 무언가 볼품없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