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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운장 Jan 09. 2020

APA 호텔은 아파요

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을 부정한 경영자가 있는 그 곳

2018년의 봄날. 

나는 도쿄의 아파호텔 진보초에키히가시에서 세밤을 묵었다.


 대망의 INN 시리즈의 첫번째 글. INN 시리즈를 떠올리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장소가 바로 지금 쓰려고 하는 이곳이다.


떠나기 하루 전날 회사에서 나는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서 플러스 알파로 새 업무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점심에 횟집에서 동료들과 쏘맥을 한잔 먹고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에 회의를 끝나고 오는 팀장의 모습을 보자마자 


저 새 업무 하는거에요? 면담 신청합니다


하고 팀장 목덜미를 잡아끌고 회의실로 향했다. 당연히 내 콧구멍에서는 뜨거운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이상한 업무 분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팀장과 투닥투다 말이 오갔는데, 팀장은 나에게 니가 지금 날 가르치러 드는거냐 라고 논리의 싸움에서 지위로 억누르려 했다. 나는 그런 팀장에게


아니 내가 내 표현도 못합니까?


하고 말을 하곤 생각할 시간을 달라하고 그 다음날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물론 즉흥적으로 떠난 건 아니고, 연초부터 계획되어 있던 여행이었다. 

도쿄에서 일하는 친구도 볼겸.


3박4일의 일정은 다소 지루했다. 몇번째 일본이며 몇번째 도쿄인 것인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무기력한 여행자였다. 도쿄의 유명관광지는 안가본 곳도 없었고 어딜가도 내 흥미를 끌만한 건 없었다. 그래도 한 게 있다면 나폴리탄과 드립 커피 먹기, 유자가 들어간 국물이 있는 라멘 먹기, 비오는 날 절에 갔다 나오는 길에 잔술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사케 먹기, 짜디짠 타마고 샌드 먹기, 안주로는 통조림 밖에 없는 바에 가서 술 먹기, 아키하바라 건담 카페가서 에이드 먹기, 스테이크 집에가서 스테이크 먹기등을 했다. 


나도 이제 제법 나이를 먹어 어느 정도 식도락을 즐길 돈도 있겠다. 심심하니 먹기에 열중 할 수 밖에. 게다가 도쿄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인 내 친구들도 도쿄생활이 익숙하고 지루한 듯. 같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술 퍼먹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술을 퍼먹고 매번 들어간 INN은 고서점으로 유명한 진보초에 있는 아파호텔진보초에키히가시다. 도쿄의 중심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렴했고, 꼴에 나는 서점직원이니까 진보초에서 묵어야 하지 않겠어? 하고 묵었던 이 곳. 


전형적인 일본의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그 좁디 좁은 공간에 있을 것 다 있고 가끔 지린내가 나는 일본의 싸구려 비즈니스 호텔말이다.


아침에 눈을 떳을 때, 기분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할 정도로 구렸다. 기분 구림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었을 것인데 1. 회사의 부당한 업무분장 2. 간밤에 퍼먹은 술의 독소 3. 그냥 우울한 인생. 4.저층에다가 창문을 열었더니 보이는 바로 옆 빌딩의 벽. 마치 감옥과도 같은 

더하기 이 호텔이 주는 이상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술을 먹다가 친구에게 들었는데 APA 호텔의 회장과 사장이 극우라는 것. 방에는 책이 있었는데 사장 아줌마가 쓴 책 같았다. 정말 요상한 분위기였고, 인터넷 검색을 하니 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은 날조라는 책을 호텔에 두었다가 중국에게 보이콧을 받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내가 이런 극우 호텔에 돈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에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짜증이 확 몰려왔고 당장 호텔방을 빼서 옆의 호텔로 옮길 호탕함이 있었으면 좋았겠으나 이틀 더 묵고 호텔을 떠났다. 


다시는 APA 호텔에 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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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근처 카페에서 나는 티슈에 볼펜으로 나의 결심을 썼다. 


근육질에 음악하는 서점직원.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근육질 : 나름 어느 정도 근육질이다. 벗겨 놓으면 큰 돼지 한마리 이긴 하고 인바디 검사를 받으면 돼지 근육형으로 나오니 성공했다 볼 수 있다.


음악하는 : 어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이 33살 즈음이 되면 새로운 음악에 빠져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작곡을 배우러 다닌다. 그냥 돈만 쓰는것 같긴한데. 오래된 말 중 이런게 있지 않나. 돈이 생기면 시간이 없다고 거기에 하나더 붙이고 싶다. 열정도 없어진다고. 그냥 꾸역꾸역 음악 주위를 서성이는 중.


서점직원 : 이후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일단 해보자고 했으나 석달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일에 GG를 쳤고 우여곡절 끝에 여전히 회사에 붙어 있다. 지금은 내가 서점직원인지 배너 팔이 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만.

비오는날 분위기에 취해 마셨던 사케
통조림만으로 안주를 파는 미스터 칸소. 의외로 비싸다.
아키하바라에 있는 건담 카페.
귀국하는 날 진보쵸 거리.
내 최애 음식 중 하나인 나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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