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산공원
이렇게 추운 날엔 부산의 여름이 몹시도 그리워진다.
나에게 부산의 여름이란 광안리나 해운대 해변이 아니라 용두산공원의 푸르른 녹음이다. 구도심의 저쪽 바닷가에는 바다 냄새나는 자갈치가 있고, 건너편에는 쇼핑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남포동과 국제시장이 있다. 영도다리를 건너면 광복동이 있다. 나는 구도심의 거리 중 광복동이 제일 좋다. 광복동 거리를 따라 쭉 걷다가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 부산타워를 바라보면 고향에 돌아온 의식을 마친 듯한 기분이 든다.
용두산 공원과 일본
용두산 공원에는 일본과 관련된 역사가 많다.
용두산에는 광복 이전에 일본식 신사가 있었다. 용두산 신사는 1678년에 왜관의 일본인들이 현해탄을 건너는 동안 무사 항해를 기원하고자 쓰시마(대마도) 번주가 세운 시설이었다. 일본인을 위해 세워진 신사지만 한일병합 이후 조선인들에게도 강제로 신사 참배를 시키게 된다.
지금도 광복동 골목골목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다. 광복동은 일본인이 부산여행의 거점으로 삼는 곳. 길을 걷다 보면 골목골목 엔화를 원으로 바꿔주는 환전소가 있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커피숍과 술집, 식당들이 자그맣게 모여 있다. 광복동은 벤텐초(弁天町)라고 불리며 광복 이전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으로 그 전통이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용두산공원과 세일러복
1998년의 겨울이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용두산 공원으로 소풍을 갔다. 이곳에서 나는 일생일대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그건 바로 수학여행을 온 일본 여고생의 세일러복. 멀리서 지켜본 그 광경을 두고두고 간직하고 일본 여자 아이돌이나 배우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선택한 전공이 일본어. 일본에 건너가서 1년 살게 되고 일본문화 없으면 나 자신이 성립이 안 되는 역사의 시작이 바로 용두산공원의 세일러복이었다.
조선통신사 축제가 열리는 곳
매년 5월이 되면 조선 통신사 축제가 용두산 공원과 광복동 일대에서 열린다.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곳 부산, 그래서 임진왜란 당시에 가장 빨리 침략당했던 곳 부산. 한일 우호 관계의 상징인 조선 통신사의 시작 도시이기도 하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까이에 있음을 부산시민들에게 일깨우는 축제기도 하다.
용두산 대화재
한국전쟁시 피난민들이 용두산 일대에 잔뜩 모여 살았는데 전쟁 이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살았다. 1954년 겨울, 크게 불이 났다. 판잣집 1000호와 동광 국민학교가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문화재 소실이 가장 컸다. 관재청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궁중 일기, 조선왕들의 어진, 왕실 유물, 역대 재상을 그린 초상화, 어필, 많은 서적과 은제기 등 궁중 유물 4000여 점 중 3500여 점이 소실되었고 겨우 500여 점만 남게 되었다. 이를 뒤에 부산 용두산 대화재라고 부른다. 용두산 역사의 안타까운 한 페이지다.
매년 1월 1일 타종 행사가 열리는 곳
종로에 있는 보신각 타종행사로 새해 첫날을 여는 서울. 부산은 용두산 공원 타종행사로 첫날을 연다. 1999년 12월 31일. 내 인생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일 타종행사를 보신각에서 봤다. 그때는 밀레니엄이기 때문이었다. 용두산공원에서 타종 행사를 보고 도보로 영도다리를 건너 태종대까지 걸어갔다. 춥고 배고팠다. 초코바를 먹으며 태종대 모자상에서 새천년의 첫 해돋이를 봤던 기억. 풍물패의 가락 소리가 들리고... 나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거리 광복동 그리고 용두산 공원. 지금은 없어진 미화당 백화점을 지나 지금은 동주여자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동주여상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나가던 까까머리 중학생은 눈 오는 서울의 겨울밤에 부산의 여름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