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평생의 은인이 있다
나에겐 평생의 은인이 있다.
죽을 때까지 이 은인에게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2007년 여름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다. 교환학생 시험이 있어 그냥 한번 쳐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시험을 쳤는데 덜컥 그게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었다. 나는 의외로 일본어를 잘했던 것이었다. 군대에서 그리고 제대를 하고 끊임없이 일본어에 빠졌던 게 도움이 되었다.
국립 후쿠시마 대학교. 내가 가게 된 대학의 이름이다. 후쿠시마는 지금 전 세계인이 알 정도로 일본의 너무나 유명한 지역이 되어버렸다. 2008년에는 일본어과인 나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지역이었다. 후쿠시마시는 일본의 동북지방에 있는 인구 20만의 도시.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원주 정도의 도시다.
2008년 봄 후쿠시마에 도착해서 교환 학생 생활을 시작했다.
후쿠시마에서의 생활은 외롭고 쓸쓸했다. 1년이라는 세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붕 떠서 생활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를 해보려고 의욕적이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계속 혼자였다. 외로움과 쓸쓸함에 파묻힌 채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술 한잔 같이할 친구도 없었다. 운동도 게을리했고 돈이 없어 건강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때 만난 사람 다카하시 켄. 후쿠시마 현청에 근무하는 30대 공무원 아저씨. 그는 한국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고, 한국을 좋아했으며 한국어를 잘했다. 후쿠시마에는 후쿠시마와 한국을 잇는 NPO법인 후쿠칸넷트라는 단체가 있다. 켄 상과 나는 후쿠칸넷을 통해 만났다. 마침 내가 살고 있던 기숙사 뒤에 다카하시 켄 부부가 살던 맨션이 있었다.
매주 토요일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돈을 받았다. 맨션에 찾아가서 술을 먹거나, 켄 상의 부인에게 한국어 과외를 하면서 돈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나에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근처 카레 집에 데려가 밥을 먹기도 했다. 그건 아마 내 사정이 힘들다는 걸 알고 켄 상이 마음을 써준 것일 거다.
교환학생이 끝나갈 무렵 나는 홋카이도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에게 전별금이라며 1만엔을 주셨다. 나와 피와 섞인 형제도 아닌데, 그저 근처에 산다는 이유로 내 기준으로는 도가 넘칠 정도의 은혜를 입은 느낌이었다.
그 힘든 1년 동안, 그래도 켄 상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어느 날 주말 아침에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온천을 가자고 하셨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닌텐도가 원래는 화투를 만들던 회사에서 시작했다는 종류의 이야기. 그리고 도착한 타카유 온천. 후쿠시마에서 유명한 유황온천이다. 탕에서 10분 정도 있다가 나왔다. 유황온천은 오래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온천을 갔다가 받은 수건을 가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온몸에서 유황온천 특유의 달걀 썩은 냄새가 났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 사회인이 되었고,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이 나오는 땅이 되었다. 이후에 나는 후쿠시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이젠 저곳에 갈 수가 없겠구나. 내가 살던 기숙사, 타고 다닌 전차, 회색 빛 학교, 쓸쓸했던 바람과 노을, 같이 공부하고 이야기했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 아직 저곳에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했다. 꿈에도 후쿠시마가 나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켄상이 서울에 왔다. 우울증에 걸렸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후쿠시마는 괜찮냐고 물어볼 수가 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분들이나 다른 후쿠시마 사람들은 현재 진행형의 방사능은 잊은 듯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데, 나는 여전히 후쿠시마는 못 가겠다. 그걸 생각하면 켄상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는 그분들에게 입은 빚이 있는데, 후쿠시마에서의 추억이 있는데.
2년 전 같은 공무원 동료인 산페이 군과 서울에 놀러 와서 같이 술을 마셨다. 이번 겨울 산페이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서울에 왔다. 나에게 산페이는 일본에 오지 않느냐며 물어봤다. 산페이에게 이번에 오키나와를 갔다 왔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에 가지 못하고 있는 게 그곳에 사는 산페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2020 도쿄 올림픽 때나 갈 거 같다고 그때 만나자고 이야기했다.
후쿠시마는 괜찮은 걸까.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 땅에 사는 지인들의 안부가 항상 걱정된다.
이름 : 후쿠시마 타카유
위치 :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 마치니와사카 아자 다카유 25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