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나는 배웠다. 이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 모순을 없애야 한다. 사회구조가 문제다. 경쟁보다는 힘든 사람끼리 연대를 해야 한다. 나는 대학교때 이런 종류의 사회학책에 경도되었고 심각하게 공감했으며 나 혼자 살겠다고 취업준비에 열 올리는 학우들을 경멸했다. 결국 나도 취업준비를 했지만.
사회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입사 후 오로지 경쟁 논리만 있는 회사와 대학교때 체득한 나의 생각은 충돌이 일어났다. 처음엔 회사를 부정했지만 나도 점점 경쟁논리에 물들어갔다. 경쟁인 필수고 동료는 협력해야 할 대상이기보다는 적에 가깝다. 나는 사회학 책을 멀리하게 되고 자기계발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사회학 책을 읽던 시간을 아까워했다. 신자유주의의 각자도생 논리를 삼키는 순간이었다.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고, 내가 남을 도와주지 않을테다. 그래야 내가 살아남는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문제 의식은 이십대가 괴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일찍 ‘각자도생’논리를 삼켜버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울과 수도권 소재의 여러대학에 출강을 나가는 시간강사다. 전공은 사회학이다.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 공사 정규직 전환요구 문제를 수업 시간에 화두로 던졌다. 2004년도 채용 당시 정규직 전환을 보장받고 들어왔다는 여승무원측과, 그런 적이 없고 노동자들이 분명히 계약직임을 알고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사측의 입장이 충돌하는 문제였다.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한 내용이라 이쪽으로 내용이 흘러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저자. 그러나
“날로 정규직되려고 하면 안되잖아요!”
“처우 개선과 정규직 전환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긐ㅁ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합니까?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며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것 같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학생들의 답변이 날라왔다. 앞으로 노동자가 될 예비 노동자가 KTX 여승무원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줄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날로 정규직을 먹으면 안된다는 공정성이라는 칼을 가지고 온것이다.
이 책의 출간은 2013년. 2020년에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때도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 이런 포인트였다. 딱히 자격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면 어쩌나 하는 주장이 반대측의 논리였던것 같다. 로또 취업이라는 헤드라인까지 나올 정도였다.
‘로또 취업’에 배 아픈 게 아니다…청년들은 공정함의 정상화를 원했다 [김현주의 일상 톡톡]
저자가 문제 의식을 가진 2010년도의 초반쯤의 사회 분위기는 심화되면 더 심화 되었지 거꾸로 가진 않은것 같다. 88만원 세대의 논의가 나온지도 십몇년이 흘렀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바뀐게 없어보인다. 좋은 일자리는 없고 취업은 안되고 비정규직 일자리만 있는 현실.
좋은 일자리는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 걸까? 노오력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 자기계발을 열나게 해서. 이게 바로 20대가 생각하는 공정의 핵심이다.
p.33 즉, 문제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자기계발의 논리가 사실은 평생 ‘극복만 주문’받는 개인을 만들어버린다. 이십대는 불안하니까 자기계발 담론을 받아들여 위기를 넘어서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불안한 상태는 계속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돌이표처럼 갇혀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이 자기 계발의 수행에 동참하면 그 어마어마한 참여자들 덕택에 성공하는 ‘하나의’ 사례는 또 발견 될 것이ㄱ, 이는 ‘가능성’의 객관적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이 표면화될 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천수만의 사례는 ‘노력부족’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 처분된다. 이렇게 좌절하는 자아가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시장은 더 커진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낚였다!’의 다른 말인 것이다.
내 눈으로 봤을 때,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은 자기학대에 가깝고, 자아 분열에 가까워 보이다. 좋은 일자리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이상한 스펙들이 늘어난다. 진심으로 그 이상한 스펙들을 쌓고 싶은 20대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상한 스펙을 토닥이는 다른 내가 있어 자아 분열이고,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데 거기에 또 채찍질을 가한다. 그래서 자기 학대다.
2장에서 이런 자기계발의 특징을 이야기한다. 첫째, 자기계발이란 취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의미가 있다. 둘째, 결과가 보장되지 않지만 대안이 없어서 계속한다. 셋째, ‘자기계발에 열심이지 않은 게으른자’와의 비교에서 자신이 현재에 대한 위안과 만족을 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20대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을까?
3장에서는 자기계발 시대가 만들어 내고 있는 이십대의 고유한 특징을 든다. 첫째,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지기. 둘째, 편견의 확대 재생산. 셋째, 주어진 기존의 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다. 이러한 특징의 원인으로는 IMF의 추억, 경영학과의 사회학, before – after 의 덫을 그 예로 든다. 각자 도생의 시작은 IMF 관리였고, 이후 부흥하는 경영학과 그에 반해 축소되는 인문 사회학이 이십대를 괴물로 만든 원인이다.
결국엔 사회구조가 문제다. 자기 학대와 자아 분열을 멈추기 위해서는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 그 자체를 치유해야 한다. 열심히 사는건 좋다. 하지만, 죽을만큼 열심히 해야 인간 대접을 받는 사회구조라면 문제가 있다.
p.187 우리 사회의 자기계발 열풍은 개인의 절박한 상황을 방치하는 사회시스템 때문에 가능했다. 사회가 개인의 삶을 좀 더 잘 보호해줬더라면 굳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의 늪에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는 더욱 원자화 될것이고, 사회 연대는 커녕 각자 살기 더 바뻐질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꼬투리 잡아서 멸시한다. 그게 이 사회의 모습이 되어버린것 같다.
p.233 모두가 누군가를 멸시하고 누군가에게 멸시 받는다. 그래서 ‘보란듯이 갚아주겠다’는 자기계발에 몰입한다. 그러나 이건 늘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순환고리에 갇힌다. 고생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본인이 쌓은 기반을 지키려고 시간관리라는 차별화 도구로써 학력을 위계화시키는 생존전략에 매달리지만, 이것으로 악전 고투의 현실을 탈출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십대의 자기긍정은 결국 ‘덫’이요 ‘늪’일 뿐이다. 실패하면 끝장인 세상에서 이십대들은 그렇게 차갑게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