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영화관을 찾아 헤매다
교토에 가면 허름한 미니시어터에서 영화를 보자고 생각했다. 10여 년 전 원전사고가 터지기 전 후쿠시마에서 나는 외롭게 유학 생활을 했다. 그때 기댈 건 영화뿐이었다. 「FORUM」이라는 작은 영화관이 있었다. 돈이 없어 말 그대로 밥만 퍼먹던 시절이었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밤늦게 영화관에서 보고 아무도 없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국에서는 지금은 없어진 광화문 스폰지하우스를 즐겼다. 매니아 성향의 영화들과 곳곳의 빈 좌석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뭔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특별한 기분을 몹시 즐겼다. 여전히 나는 멀티플렉스에서 고만고만한 영화를 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뻔하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만 있는 도시는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미니시어터라는 공간이 좋다. 도시가 풍성해지려면 미니시어터가 많아야 한다. 멀티플렉스가 주는 안락함보다 미니시어터가 주는 특별함을 나는 사랑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교토에는 미니시어터가 없거나 내가 찾지 못해 일본의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봤다. 내가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 이라는 영화가 마침 개봉했다. 한산한 평일의 오후였다. 고레에다의 전작과는 달리 나에게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내가 일본어를 잘 못 알아듣는 게 아닌가? 아마 법률용어들이 많이 등장해서이겠지만 중간부터는 이야기의 흐름을 좇지 못했다.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환상 없이 사는 게 가능할까? 나는 일본 영화와 일본 문화에 푹 빠지게 된 뒤 대학을 전공을 일본어로 선택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건 일본어가 아니고 일본 영화가 주는 특유의 느낌이다. 여전히 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동경했던 일본 영화의 이미지와 감성을 좇아 교토 그리고 일본의 곳곳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왠지 멋있는 이야기 같지만, 욘사마의 팬이 남이섬에 가거나 동방신기의 팬이 명동 거리를 헤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